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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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국가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서 논란이 되는 대목은 14조다. 전문 인력 본인의 동의가 있거나 전략 기술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해당 인력의 출입국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핵심 기술 보호를 위한 목적이라지만 민간인 통제 장치로 작용할 수 있어 파장이 커지고 있다.

기업에 “명단 적어내라”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 인력 유출 방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해외 이직 제한이 필요한 핵심 인력 명단 등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기업들이 명단을 제출한 핵심 인력을 중심으로 DB를 구축하고 향후 법을 개정해 관리 인력의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술 유출 위험이 있는 인력이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달라는 건 기업들이 먼저 요청한 사항”이라며 “이를 위해선 사전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7월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DB 구축에 나서려면 기업이 핵심 엔지니어의 개별 동의를 받은 뒤 산업부에 명단을 넘겨야 한다. 산업부는 제출받은 명단을 근거로 이들의 출입국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정부가 직접 기술 인력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인 동의 없이 출입국 정보 등을 들여다보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가 핵심산업에 종사하는 기술 인력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다는 예외 조항이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또 다른 카드는 특허청이 지난해 지식재산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출범시킨 조직인 ‘기술경찰’이다. 특허청은 올해부터 기술 유출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기술경찰 수를 늘리고, 권한도 강화하기로 했다. 특허 침해 단속 위주였던 기술경찰의 수사 범위도 올해부터 기술 유출 범죄 전반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기업 엔지니어 명단은 핵심기밀…정부에 통째 넘겼다 정보 샐라"

정부의 DB화 과정에서 정보 유출 우려

기업들은 민감한 영업비밀 중 하나인 핵심 엔지니어 명단을 정부에 넘기는 것을 꺼리고 있다. DB 구축 과정에서 경쟁사 등으로 정보가 새어 나갈 수 있어서다. 주요 대기업은 핵심 엔지니어 명단을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왔다. 해당 기업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라고 하더라도 다른 팀에 누가 근무하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게 ‘방화벽’을 설치한 기업이 많다.

기업이 특정 인물을 모니터링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기도 쉽지 않다. 기업 내부적으로 기술을 유출할 가능성이 큰 인물로 보고 있다는 셈이어서 자칫 알려질 경우 기업 이미지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막강한 정보통제력을 우려하는 ‘빅브러더’ 논란이 일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인재와 기술 유출 방지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엔지니어들의 개인정보를 국가에서 챙기겠다는 것은 곤란하다”며 “정부가 DB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특별조치법 14조에 등장하는 ‘기술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란 예외 조항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해당하면 정부는 개인 동의를 받지 않아도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인지 알 수 없어 과잉 적용될 소지가 있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해외 인재도 함께 모니터링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엔지니어까지 모니터링 대상으로 분류된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자칫 해외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국인만 예외로 두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외국에서 인력을 영입할 때 국가에서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당사자에게 알려야 한다”며 “이 경우 가뜩이나 힘든 해외 핵심 인재 영입의 길이 완전히 차단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술 인력의 사기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기업 엔지니어는 “기술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게 아니냐”며 “해외여행을 어디로 가는지까지 국가에서 수집한다고 하면 납득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있겠느냐”고 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무리 핵심 기술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라고 해도 민간인을 정부에서 리스트까지 작성해 관리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며 “전례 없는 민간인 감시 조항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수빈/이지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