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에 건물 가진 '찐부자' 한국인의 정체 [강영연의 뉴욕부동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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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 강가에 서서 맨해튼을 바라보는 스카이라인은 세계 최고로 꼽힙니다. 마천루로 불리는 세계 최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은 낮에 보든 밤에 보든 장관입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만 내꺼였으면" 저보다 빨리 이런 생각을 하고, 실행에 까지 옮긴 깨어있는 한국인이 있었습니다. 한국 기관으로 처음으로 뉴욕맨해튼 건물주가 된 곳, 바로 한국무역협회입니다.
한국무역협회는 1967년 1월부터 미국 뉴욕에 지부를 설치하고 운영해왔습니다. 1960년대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경제의 든든한 지원군은 미국이었습니다. 1965년 6200만달러였던 대미 수출액은 1970년 3억9000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47.3%를 차지할 정도록 급증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이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고,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진출할 수록 현지에서 정부 기관 등과의 협업이 필요해졌습니다. 기관들도 늘어났고, 점점 더 많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세입자의 설움은 있었습니다. 미국에 진출한 기관들은 안정적인 입주공간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 때문에 1960년대부터 미국의 상업과 금융 중심지인 뉴욕에 코리아센터를 설치하려던 움직임은 있었습니다. 번번히 다음으로 미뤄지던 시도는 1970년 들어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1971년 김동조 주미 대사가 설치를 건의했고, 다음해인 1972년 코트라가 미주지역 수출진흥공관장회의에서 잇따라 이를 강조하면서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치적인 고려도 작용했습니다. 1972년 북한과 중국이 뉴욕에 나란히 UN대표부를 설치하거나 건물을 구입하면서 견제 심리가 커졌습니다. '우리도 질 수 없다'는 정서가 생긴 거죠.
결국 1973년 코리아센터 설치 계획이 확정됐습니다. 당시 한국무역협회장은 상공부 장관을 지낸 박충훈 회장이었습니다. 그는 뉴욕 맨해튼의 여러 곳 중에서도 파크 에비뉴에 건물을 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한국무역협회는 1974년 3월 '460 파크 에비뉴' 건물을 구입했습니다. 지금와서 봐도 정말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에비뉴는 맨해튼을 세로로 나누는 큰 길을 의미합니다. 오른쪽에서 시작돼 왼쪽으로 갈수록 숫자가 커집니다. 숫자가 없는 에비뉴도 있는데요. 3번 에비뉴 다음에 4번 에비뉴가 없습니다. 대신 렉싱턴 에비뉴, 파크 에비뉴, 메디슨 에비뉴가 있습니다. 그 다음이 명품 쇼핑 거리로 유명한 '핍스 에비뉴(5th Avenue)' 입니다.
파크 에비뉴는 특히 고급 오피스가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뉴욕 맨해튼에는 대형 투자은행(IB)이나 증권사 외에 작은 운용사, 자문사 등이 많은데요. 명함을 받았을 때 주소가 파크 에비뉴에 있다면 괜찮은 곳이구나 하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파크 에비뉴의 특징 중 하나는 양방향 도로가 있다는 점입니다. 맨해튼에서 운전하기 힘든 이유가 교통체증도 있지만 일방통행인 탓에 길을 한번 잘못 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는 점인데요. 파크 에비뉴는 그에 비해 교통도 편하고, 길도 넓어서 인기가 있는 지역입니다. 부동산에서 입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바로 여기에 한국무역협회의 코리아센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파크에비뉴에 완전히 붙어있는 최고의 입지입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파크에비뉴는 뉴욕 맨해튼 플라자 지역 안에서도 굴지의 미국 대기업이 밀집된 곳이었다"며 "인근에 씨티은행 본점 등 대형 은행과 제너럴 모터스(GM) 등 대기업 본사 건물이 있었을 만큼 중심지였다"고 설명했다.
코리아센터의 입지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는 최근의 일화도 있습니다. 이 건물 1층에서 씨티은행이 입점해 있는데요. 팬데믹 동안에 문을 닫으면서도 임대료를 꼬박 꼬박 냈다고 합니다. 임대료를 깎아주지 않아도 되고, 다시 문도 열테니 다른 임대인을 받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곳이 유명한 PB지점으로 맨해튼의 부촌으로 꼽히는 어퍼이스트에서 접근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어퍼이스트는 가쉽걸에서 '블레어'가 사는 바로 그 동네입니다. 어퍼이스트의 부자들이 차를 타고 오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절대 이 지점을 포기 할 수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파크에비뉴 답게 입주사들 목록에는 금융기업들의 이름이 많이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씨티은행을 비롯해 인도국립은행, DG캐피탈, 숀펠트 등이 있습니다. 부동산 관련 회사인 ACP, 라이트스톤 등도 코리아센터 세입자입니다.
코리아센터의 더 중요한 역할은 한국 기업들과 기관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건물에는 한국계 주요 기관들이 많이 입주해있습니다. 먼저 뉴욕 총영사관이 있습니다. 건물 전면에 태극기가 늘 걸려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뉴욕한국문화원, 코트라, KEB하나은행, 무역보험공사, 한국수출입은행, 미한국상공회의소(KOCHAM), 한국무역협회 등도 입주했습니다.
코리아센터에는 스타트업 브랜치도 있어 창업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것. 이 건물 가격입니다. 일단 한국무역협회는 1974년 당시 이 건물을 3000만달러(362억원)에 구입했습니다. 현재 가치는 3억~4억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5억달러까지도 올랐었는데, 팬데믹 이후 맨해튼 건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조금 조정이 됐다고 합니다. 10배 이상 가격이 오른 셈입니다. 맨해튼 건물 가격이 많이 올라 이제는 신규 매입이 쉽지 않은 점, 여기에 매달 발생하는 월세 수입까지 고려하면 한국무역협회 사상 최고의 투자 중 하나로 꼽힐만 해보입니다.
한국 입장에서도 좋은 투자였습니다. 건물이 없는 일부 국가들은 임대 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대사관 등 주요 기관들을 이사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특히 대사관 등은 도청을 비롯해 보안 시설을 모두 점검하고 기준에 맞춰야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사실상 꽉 잡고 있는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한국 기관이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도 의미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만 내꺼였으면" 저보다 빨리 이런 생각을 하고, 실행에 까지 옮긴 깨어있는 한국인이 있었습니다. 한국 기관으로 처음으로 뉴욕맨해튼 건물주가 된 곳, 바로 한국무역협회입니다.
한국무역협회는 1967년 1월부터 미국 뉴욕에 지부를 설치하고 운영해왔습니다. 1960년대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경제의 든든한 지원군은 미국이었습니다. 1965년 6200만달러였던 대미 수출액은 1970년 3억9000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47.3%를 차지할 정도록 급증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이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고,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진출할 수록 현지에서 정부 기관 등과의 협업이 필요해졌습니다. 기관들도 늘어났고, 점점 더 많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세입자의 설움은 있었습니다. 미국에 진출한 기관들은 안정적인 입주공간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 때문에 1960년대부터 미국의 상업과 금융 중심지인 뉴욕에 코리아센터를 설치하려던 움직임은 있었습니다. 번번히 다음으로 미뤄지던 시도는 1970년 들어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1971년 김동조 주미 대사가 설치를 건의했고, 다음해인 1972년 코트라가 미주지역 수출진흥공관장회의에서 잇따라 이를 강조하면서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치적인 고려도 작용했습니다. 1972년 북한과 중국이 뉴욕에 나란히 UN대표부를 설치하거나 건물을 구입하면서 견제 심리가 커졌습니다. '우리도 질 수 없다'는 정서가 생긴 거죠.
결국 1973년 코리아센터 설치 계획이 확정됐습니다. 당시 한국무역협회장은 상공부 장관을 지낸 박충훈 회장이었습니다. 그는 뉴욕 맨해튼의 여러 곳 중에서도 파크 에비뉴에 건물을 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한국무역협회는 1974년 3월 '460 파크 에비뉴' 건물을 구입했습니다. 지금와서 봐도 정말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에비뉴는 맨해튼을 세로로 나누는 큰 길을 의미합니다. 오른쪽에서 시작돼 왼쪽으로 갈수록 숫자가 커집니다. 숫자가 없는 에비뉴도 있는데요. 3번 에비뉴 다음에 4번 에비뉴가 없습니다. 대신 렉싱턴 에비뉴, 파크 에비뉴, 메디슨 에비뉴가 있습니다. 그 다음이 명품 쇼핑 거리로 유명한 '핍스 에비뉴(5th Avenue)' 입니다.
파크 에비뉴는 특히 고급 오피스가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뉴욕 맨해튼에는 대형 투자은행(IB)이나 증권사 외에 작은 운용사, 자문사 등이 많은데요. 명함을 받았을 때 주소가 파크 에비뉴에 있다면 괜찮은 곳이구나 하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파크 에비뉴의 특징 중 하나는 양방향 도로가 있다는 점입니다. 맨해튼에서 운전하기 힘든 이유가 교통체증도 있지만 일방통행인 탓에 길을 한번 잘못 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는 점인데요. 파크 에비뉴는 그에 비해 교통도 편하고, 길도 넓어서 인기가 있는 지역입니다. 부동산에서 입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바로 여기에 한국무역협회의 코리아센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파크에비뉴에 완전히 붙어있는 최고의 입지입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파크에비뉴는 뉴욕 맨해튼 플라자 지역 안에서도 굴지의 미국 대기업이 밀집된 곳이었다"며 "인근에 씨티은행 본점 등 대형 은행과 제너럴 모터스(GM) 등 대기업 본사 건물이 있었을 만큼 중심지였다"고 설명했다.
코리아센터의 입지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는 최근의 일화도 있습니다. 이 건물 1층에서 씨티은행이 입점해 있는데요. 팬데믹 동안에 문을 닫으면서도 임대료를 꼬박 꼬박 냈다고 합니다. 임대료를 깎아주지 않아도 되고, 다시 문도 열테니 다른 임대인을 받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곳이 유명한 PB지점으로 맨해튼의 부촌으로 꼽히는 어퍼이스트에서 접근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어퍼이스트는 가쉽걸에서 '블레어'가 사는 바로 그 동네입니다. 어퍼이스트의 부자들이 차를 타고 오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절대 이 지점을 포기 할 수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파크에비뉴 답게 입주사들 목록에는 금융기업들의 이름이 많이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씨티은행을 비롯해 인도국립은행, DG캐피탈, 숀펠트 등이 있습니다. 부동산 관련 회사인 ACP, 라이트스톤 등도 코리아센터 세입자입니다.
코리아센터의 더 중요한 역할은 한국 기업들과 기관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건물에는 한국계 주요 기관들이 많이 입주해있습니다. 먼저 뉴욕 총영사관이 있습니다. 건물 전면에 태극기가 늘 걸려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뉴욕한국문화원, 코트라, KEB하나은행, 무역보험공사, 한국수출입은행, 미한국상공회의소(KOCHAM), 한국무역협회 등도 입주했습니다.
코리아센터에는 스타트업 브랜치도 있어 창업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것. 이 건물 가격입니다. 일단 한국무역협회는 1974년 당시 이 건물을 3000만달러(362억원)에 구입했습니다. 현재 가치는 3억~4억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5억달러까지도 올랐었는데, 팬데믹 이후 맨해튼 건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조금 조정이 됐다고 합니다. 10배 이상 가격이 오른 셈입니다. 맨해튼 건물 가격이 많이 올라 이제는 신규 매입이 쉽지 않은 점, 여기에 매달 발생하는 월세 수입까지 고려하면 한국무역협회 사상 최고의 투자 중 하나로 꼽힐만 해보입니다.
한국 입장에서도 좋은 투자였습니다. 건물이 없는 일부 국가들은 임대 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대사관 등 주요 기관들을 이사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특히 대사관 등은 도청을 비롯해 보안 시설을 모두 점검하고 기준에 맞춰야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사실상 꽉 잡고 있는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한국 기관이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도 의미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