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풍경에 취하고…편백 욕조에 힐링까지[박동휘의 가볼만한가(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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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밑 켄싱턴 리조트
푯말도 없이 숨은 듯 자리잡은 오지 호텔
스파룸, 안마룸 등 객실 리뉴얼로 MZ세대 사로잡아
차(茶) 시배지 화개, 봄이면 벚꽃이 지천
푯말도 없이 숨은 듯 자리잡은 오지 호텔
스파룸, 안마룸 등 객실 리뉴얼로 MZ세대 사로잡아
차(茶) 시배지 화개, 봄이면 벚꽃이 지천
전남 구례 쌍계사를 수차례 갔지만, 턱밑에 호텔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켄싱턴리조트 하동점은 쌍계사로 들어가기 전, 너댓개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차장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무슨 사연인 지 화개면 읍내에서부터 천천히 길을 짚어가도 켄싱턴리조트의 위치를 알려주는 푯말 하나 없다. 그래서인 지 막상 그곳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배가 된다.
켄싱턴 하동점은 지리산을 차경으로 삼았다는 점만으로도 가볼만한 곳이다. 객실 창으로 멀리 시선을 던지면, 선 굵은 지리산의 산맥과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갈 실개천, 수백년을 이어왔을 차밭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 하나 열 수 없는 특급호텔들과는 그 여유로임이 비교할 수 조차 없을 정도다.
이왕 켄싱턴 하동에서 묵기로 했다면 일찌감치 체크인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아직 공기가 차가운 이맘 때 한 낮에 반신욕을 하며, 지리산을 감상하는 맛은 여행의 피로를 날리고도 남는다. 저녁 나절 해가 산 뒤로 넘어갈 무렵도 좋고, 불꺼진 깊은 밤이면 점점이 박힌 하늘의 별들을 넋놓고 바라보게 된다.
켄싱턴 하동을 운영하는 이랜드파크는 스파룸 외에도 특색 있는 객실을 마련해 색다른 숙박을 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최신식 안마 의자를 비치해 놓은 객실도 있다고 한다. 도심의 특급호텔들에 비하면 욕실이나 어뮤니티들은 다소 낡은 감이 없지 없지만, 이랜드파크는 천편일률적인 객실을 각각 차별화된 공간으로 바꿈으로써 신선한 반전을 일으켰다.
켄싱턴 하동의 또 다른 장점은 조식이다. 패키지에 대부분 포함돼 있는데 불포함이라고 하더라도 투숙객은 1인당 1만2500원 정도에 맛 볼 수 있다. 섬진강의 명물인 재첩 무침을 비롯해 지리산이 내놓은 제철 나물로 만든 비빔밥만 해도 본전은 뽑는 기분이었다. 여기에 서양식 조식으로도 손색없을 간단한 요리들도 갖춰놨다. 보통 가격이 낮으면 식재료 품질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어쩐 일인지 켄싱턴 하동의 조식에선 이 같은 꼼수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호텔&리조트에 관한 신념이 허언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특급호텔의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에 켄싱턴 리조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숙소를 켄싱턴 하동으로 정했다면 마땅히 쌍계사를 다녀가야 한다. 두 개의 실개천을 굽어보고 있다고 해서 쌍계(雙溪)라는 이름이 붙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총림이다. 화개면에서 절까지 이르는 쌍계 십리 벚꽃길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환상의 꽃길이다. 꽃이 핀다는 의미의 마을 이름과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5년 전쯤인가, 여름에 아이와 템플스테이를 했던 곳이기도 해서 이번 여행길은 또 다른 감회를 일으켰다. 국보 제47호인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등 경내의 보물들을 찬찬히 뜯어보고, 템플스테이 숙소로 쓰이는 건물까지 휘 둘러보며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와 왔던 곳인데 기억나지?”, 아뿔싸, 중2 아들에게 이런 감성적인 질문을 하다니. 아들의 답은 이랬다. “또 그런 거 물어보면 다시는 여행 같이 안 온다”. 어차피 사람은 망각 덕분에 새로움에서 더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던가. 쌍계사 벚꽃길은 언제나 또 가도, 늘 새롭다.
화개에서 악양으로 가는 길에 다원들이 여럿 있는데 이 중 ‘소소’라는 이름이 붙은 다원에 우연히 들렀다. 백발에 맑은 얼굴을 한 세련된 주인장은 서울 인사동에서 오랫동안 차를 판매하다, 몇 년 전 쌍계사 아랫동네에 정착했다. 하동 차의 매력에 대해 그는 “마음과 혈을 맑게 해주는 자연의 선물”이라고 했다. 차로는 닿지 않는 지리산 속 자연 차밭에서 채취한 우전(雨田, 곡우 전에 채취하는 차)은 추운 겨울을 견디며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데, 이를 온전히 차에 담는 것이 장인의 공력이라고 한다. 마치 프랑스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의 포토밭에 가보면, 채 무릎 높이도 안될 것 같은 포도나무에 한 두 송이 매달려 있는 생명력 강한 포도의 이치와 비슷하다. 풍요로움보다는 척박함에서 진미가 탄생하는 법이다. 아쉽게도, 요즘 화개면의 풍광 좋은 자리엔 다원보다는 예쁜 건물의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주차장이 꽉 찬 곳은 대부분 카페다. 커피는 모든 향을 삼키는 음료다. 찌꺼기를 방향제로 쓸 정도다. 커피 앞에서 은은하고, 세밀한 향의 차가 설 자리는 좁기만 하다.
화개에서 악양으로 가는 길은 곡성께에서 시작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가는 길이다. 한국의 하천은 대부분 동에서 서로 흘러가는데 유독 남향의 강은 섬진강과 낙동강 뿐이라고 한다. 섬진강을 두고, 『토지』의 박경리 작가는 길상의 입을 빌어 “하늘 끝간 데가 어디멘지 세상은 넓고 또 넓은 것 같아 가슴이 설레였던 것이다”고 읊었다. 겨울의 섬진강은 가까이에 다가가면 눈이 시릴 정도로 맑다. 소설 토지의 무대로 알려진 악양면 평사리를 관통하는 섬진강엔 곱디고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평사리에 조성된 ‘최참판댁’이라는 이름의 토지 테마공원에서 저 멀리에서부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속도에 치우쳐 있는 도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박경리 작가는 『우리들의 시간』이란 시에서 토닥이듯 보통 사람들의 허위 같은 삶을 이렇게 꾸짖었다.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 본들 도로무익(徒勞無益)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켄싱턴 하동점은 지리산을 차경으로 삼았다는 점만으로도 가볼만한 곳이다. 객실 창으로 멀리 시선을 던지면, 선 굵은 지리산의 산맥과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갈 실개천, 수백년을 이어왔을 차밭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 하나 열 수 없는 특급호텔들과는 그 여유로임이 비교할 수 조차 없을 정도다.
이 세상 풍경이 아닌 듯, 지리산을 담은 리조트
차경이 말 그대로 경치를 빌린 것이라면, 켄싱턴을 운영하는 이랜드파크는 완상(玩賞)을 배가시킬 비장의 무기를 마련해놨다. 베란다를 스파와 다도의 공간으로 꾸민 것. 객실쪽 베란다에 편백 나무로 만든 욕조를 두고, 거실쪽엔 2~4명 정도 앉아서 차를 즐길 수 있는 의자를 비치했다. 중작(중간 크기 찻잎으로 만든 녹차)과 다구도 갖춰놨다.이왕 켄싱턴 하동에서 묵기로 했다면 일찌감치 체크인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아직 공기가 차가운 이맘 때 한 낮에 반신욕을 하며, 지리산을 감상하는 맛은 여행의 피로를 날리고도 남는다. 저녁 나절 해가 산 뒤로 넘어갈 무렵도 좋고, 불꺼진 깊은 밤이면 점점이 박힌 하늘의 별들을 넋놓고 바라보게 된다.
켄싱턴 하동을 운영하는 이랜드파크는 스파룸 외에도 특색 있는 객실을 마련해 색다른 숙박을 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최신식 안마 의자를 비치해 놓은 객실도 있다고 한다. 도심의 특급호텔들에 비하면 욕실이나 어뮤니티들은 다소 낡은 감이 없지 없지만, 이랜드파크는 천편일률적인 객실을 각각 차별화된 공간으로 바꿈으로써 신선한 반전을 일으켰다.
켄싱턴 하동의 또 다른 장점은 조식이다. 패키지에 대부분 포함돼 있는데 불포함이라고 하더라도 투숙객은 1인당 1만2500원 정도에 맛 볼 수 있다. 섬진강의 명물인 재첩 무침을 비롯해 지리산이 내놓은 제철 나물로 만든 비빔밥만 해도 본전은 뽑는 기분이었다. 여기에 서양식 조식으로도 손색없을 간단한 요리들도 갖춰놨다. 보통 가격이 낮으면 식재료 품질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어쩐 일인지 켄싱턴 하동의 조식에선 이 같은 꼼수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호텔&리조트에 관한 신념이 허언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특급호텔의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에 켄싱턴 리조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숙소를 켄싱턴 하동으로 정했다면 마땅히 쌍계사를 다녀가야 한다. 두 개의 실개천을 굽어보고 있다고 해서 쌍계(雙溪)라는 이름이 붙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총림이다. 화개면에서 절까지 이르는 쌍계 십리 벚꽃길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환상의 꽃길이다. 꽃이 핀다는 의미의 마을 이름과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5년 전쯤인가, 여름에 아이와 템플스테이를 했던 곳이기도 해서 이번 여행길은 또 다른 감회를 일으켰다. 국보 제47호인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등 경내의 보물들을 찬찬히 뜯어보고, 템플스테이 숙소로 쓰이는 건물까지 휘 둘러보며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와 왔던 곳인데 기억나지?”, 아뿔싸, 중2 아들에게 이런 감성적인 질문을 하다니. 아들의 답은 이랬다. “또 그런 거 물어보면 다시는 여행 같이 안 온다”. 어차피 사람은 망각 덕분에 새로움에서 더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던가. 쌍계사 벚꽃길은 언제나 또 가도, 늘 새롭다.
화개에서 악양까지, 섬진강 따라 필 벚꽃 기다리며
사실, 쌍계사의 명물은 따로 있다. 쌍계사 일원에 자생적으로 자라난 천연 차밭에서 채취한 녹차다. 보성과 함께 한국의 양대 차 생산지가 하동이다. 켄싱턴 하동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쌍계사를 둘러본 뒤 화개면 일원 곳곳에 있는 다원(茶園)에서 녹차 한 잔 음미하는 건 하동 여행의 백미 중 하나다. 쌍계사 주변의 차밭은 한국 차문화의 시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깊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그의 차 제자인 초의선사, 그리고 초의의 평생의 도반이던 추사 김정희가 만들어 낸 한국식 다도의 뿌리가 이곳 쌍계 차밭이다.화개에서 악양으로 가는 길에 다원들이 여럿 있는데 이 중 ‘소소’라는 이름이 붙은 다원에 우연히 들렀다. 백발에 맑은 얼굴을 한 세련된 주인장은 서울 인사동에서 오랫동안 차를 판매하다, 몇 년 전 쌍계사 아랫동네에 정착했다. 하동 차의 매력에 대해 그는 “마음과 혈을 맑게 해주는 자연의 선물”이라고 했다. 차로는 닿지 않는 지리산 속 자연 차밭에서 채취한 우전(雨田, 곡우 전에 채취하는 차)은 추운 겨울을 견디며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데, 이를 온전히 차에 담는 것이 장인의 공력이라고 한다. 마치 프랑스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의 포토밭에 가보면, 채 무릎 높이도 안될 것 같은 포도나무에 한 두 송이 매달려 있는 생명력 강한 포도의 이치와 비슷하다. 풍요로움보다는 척박함에서 진미가 탄생하는 법이다. 아쉽게도, 요즘 화개면의 풍광 좋은 자리엔 다원보다는 예쁜 건물의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주차장이 꽉 찬 곳은 대부분 카페다. 커피는 모든 향을 삼키는 음료다. 찌꺼기를 방향제로 쓸 정도다. 커피 앞에서 은은하고, 세밀한 향의 차가 설 자리는 좁기만 하다.
화개에서 악양으로 가는 길은 곡성께에서 시작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가는 길이다. 한국의 하천은 대부분 동에서 서로 흘러가는데 유독 남향의 강은 섬진강과 낙동강 뿐이라고 한다. 섬진강을 두고, 『토지』의 박경리 작가는 길상의 입을 빌어 “하늘 끝간 데가 어디멘지 세상은 넓고 또 넓은 것 같아 가슴이 설레였던 것이다”고 읊었다. 겨울의 섬진강은 가까이에 다가가면 눈이 시릴 정도로 맑다. 소설 토지의 무대로 알려진 악양면 평사리를 관통하는 섬진강엔 곱디고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평사리에 조성된 ‘최참판댁’이라는 이름의 토지 테마공원에서 저 멀리에서부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속도에 치우쳐 있는 도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박경리 작가는 『우리들의 시간』이란 시에서 토닥이듯 보통 사람들의 허위 같은 삶을 이렇게 꾸짖었다.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 본들 도로무익(徒勞無益)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