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혐의로 사형 선고받고 16년 복역…대법 "불법 수사, 증거능력 없어"
'고문으로 허위자백' 재일동포 손유형씨 40년만에 무죄 확정
고국에 방문했다가 공안당국에 체포된 뒤 사형 선고를 받은 재일동포 사업가 고(故) 손유형(1929∼2014)씨의 무죄가 재심 끝에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간첩과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재심)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유류 관련 부품을 국내에 보급하는 판매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던 손씨는 1981년 4월 25일 오전 10시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수사관들에 의해 적법한 영장 없이 연행됐다.

그는 그해 6월 9일 '일본을 거점으로 한 우회 침투 간첩'으로 명명돼 구속됐는데, 체포 뒤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채 불법 구금된 46일 동안 안기부 수사관들의 고문을 받고 혐의를 인정하는 자술서를 썼다.

오사카의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상공회 간부로 있던 자신이 1964년 일본에 밀파된 북한의 공작원에게 포섭됐으며, 1971∼1981년 총 177차례에 걸쳐 통신 지령을 받으면서 한국에 25회 입국해 군인, 공무원, 밀항자 등을 포섭하고 북한에 정보를 넘겼다는 혐의다.

대학과 공장, 군부에 지하망을 조직해 학생 시위와 노동자 파업을 선동하라는 지령을 받은 혐의도 받았다.

1심 재판에서 손씨는 '안기부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진술을 했다', '나는 한글을 잘 쓰지 못하는데 안기부 담당관이 조서를 임의 작성했다'는 등 결백을 주장했으나 1981년 11월 법원은 사형과 몰수를 선고했다.

손씨는 항소했지만 이듬해 2심은 같은 판결을 유지했으며 대법원까지 간 끝에 형이 확정됐다.

이후 징역형으로 감형받은 그는 1998년 3월 가석방돼 일본으로 돌아간 뒤 2014년 숨졌다.

그의 사망 후 유족은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 형사12-1부(최봉희 진현민 김형진 부장판사)는 지난해 1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손씨와 공동 피고인들이 안기부에 불법 체포·구금된 상황에서 가혹행위와 회유로 인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을 뿐이라고 보고 자술서와 반성문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손씨의 부인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임의제출한 물품 등을 증거로 삼았지만 재심 재판부는 이들도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형식적으로는 임의제출이지만 실제로는 불법 수사 과정에서 얻어낸 진술에 기초해 영장 없이 강제로 수집한 증거라는 것이다.

모두 다섯 차례 재판기일을 열어 사건을 다시 심리한 재판부는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상고했으나 대법원 역시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