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로 정부가 한 달여 전에 발표한 17종의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에서 서울의 3000㎡ 이상 대형 상점·마트·백화점이 빠지게 됐다. 생활필수시설에까지 방역패스를 강제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과 자유권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과잉이라는 게 판결 요지다. 청소년(12~18세)이 PC방 식당 카페 영화관 등 9종의 시설을 출입할 때 방역패스를 의무화한 조치도 현저히 낮은 중증화율을 감안할 때 합리적 근거가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정부는 “법원이 방역패스 제도 도입의 공익성은 인정했다”고 강조했지만, 이번 집행정지 대상에서 빠진 식당 영화관 도서관 등은 방역패스가 정당하다고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집행을 당장 멈춰야 할 긴급성은 덜하니 본안소송에서 따져봐야 한다”는 게 법원 입장이다.
방역 편의주의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이번 판결은 다수의 합리적 국민의 생각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문제는 방역당국이 법원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방역당국은 기본권 제한에 대한 사과는커녕 “법원 결정을 아쉽게 생각한다”는 입장만 내놨다. 방역패스 조치를 주도한 일부 의료진은 ‘법원이 과학에 대해 잘 몰라서 내린 결정’이라는 오만함까지 내비쳤다. 진위를 판별하는 판사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이론을 ‘과학’이라고 우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판결은 서울 외 지역에는 적용되지 않는 만큼 계도기간이 종료되는 17일 0시부터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방역당국은 17일에야 회의를 열어 대책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회의 뒤 발표가 있을 때까지 마트·백화점 입구에서 줄 서서 처분을 기다리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고압적 태도다.
방역당국은 기본권 침해요인에 대한 점검과 재설계를 서둘러야 한다. 임신부, 의사가 접종 말라고 권유한 기저질환자, 백신 이상반응 경험자 등에게까지 백신을 강제하는 데 대한 분노가 상당하다. 기본권 시비가 불거지고, 법원이 오류를 지적했는데도 고치지 않는다면 정부는 민주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