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패스 필요하지만 학원·마트 등 일부 시설 적용은 무리"
"거리두기 등의 조치가 적시에 시행됐어야"…"법원 논리에 허점" 지적도
의료계 "방역패스, 임신부 등 예외 인정하고 적용시설 줄여야"
법원이 학원 등 일부 시설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시행에 제동을 건 데 대해 5일 의료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정책에 더욱 세심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원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법원 논리에 허점이 있다'는 식으로 의견이 갈렸지만 백신을 접종하지 못하는 사람을 더욱 배려하고, 방역패스 적용 시설을 정할 때도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게 좋겠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다음은 방역패스 정책의 한계와 보완책에 대한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의 의견이다.

의료계 "방역패스, 임신부 등 예외 인정하고 적용시설 줄여야"
◇ 최재욱 "감염위험 적어 학원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예외 대상자 늘려야"
애초부터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학원이나 독서실 등의 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이 아니어서 이들 시설에까지 방역패스를 적용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과거와 비교해 10대 확진자가 늘어났다는 통계를 제시하긴 했지만, 전체 확진자 중에 10대가 차지하는 비율 자체가 크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식당, 카페 등의 시설과 달리 학원, 독서실 등은 고정된 사람이 다니는 장소라 감염 위험이 크지 않다.

학원과 같은 교육기관은 물론, 방역패스를 새로 적용하겠다는 대형마트 등은 기본권과 연결돼 있어 방역패스를 적용할 때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

방역패스 제도를 유지하려면 기저질환자나 임신부 등도 접종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백신 예외 대상을 확대해줘야 한다고 본다.

지금 예외로 인정하는 건 심근염·심낭염, 아나필락시스, 혈소판 감소성 혈전증 등인데, 이마저도 백신을 맞고 나서 이를 진단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백신을 맞기 싫어서 기피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이유로 맞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저질환으로 부작용이 의심되거나 태아에 대한 불확실성을 염려하는 임신부 등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 방역패스를 필요한 수준 하에서 실행할 수 있다고 본다.

◇ 정재훈 "판결 취지는 이해하나 의학적 관점에 대한 이해 부족"
결정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나 방역 전문가 입장에서 보았을 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근거로 작년 12월 2주 차 12세 이상 백신접종자 집단과 미접종 집단간의 감염위험이 제시됐는데, 일주일간의 감염자 비율은 전체적인 유행상황에서 너무나 일부분만 본 것이다.

결정문에서는 백신 미접종자 집단 감염확률이 57%, 즉 2.3배 높다는 것을 두고 백신 미접종자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크다고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는 오히려 백신에 감염예방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 미접종자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것뿐 아니라 다중이용시설에서 감염될 가능성도 간과한 판단이다.

물론 다른 집단에 비해 청소년이 방역패스 적용으로 인해 얻을 수 있다는 이익이 적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또 국민들에게 접종을 설득하기 위해 정책적 제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의료 전문가들도 계속해왔던 이야기다.

결국 이번 결정 취지를 큰 틀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판결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된 통계 등은 판사가 과학적인 사실을 협소하게 해석했다고 생각한다.

의료계 "방역패스, 임신부 등 예외 인정하고 적용시설 줄여야"
◇ 김우주 "방역실패는 정부가 접종·거리두기 강화를 제때 못한 탓"
법원이 기본권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의식주와 관련된 시설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비슷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접종은 개인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문제다.

법원 판단에 찬성한다.

다만 학부모 단체 등이 제기한 청소년 백신 부작용, 안전성 이슈가 다뤄지지 않아 아쉽다.

백신 접종과 거리두기가 방역의 핵심이라는 것은 저도 200% 동의한다.

하지만 '위드코로나'를 시작한 11월부터 현재까지 방역에 실패한 것은 미접종자 탓이 아니라 접종 정책과 거리두기 정책을 적기에 과감하게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월에 고령자를 대상으로 부스터샷(3차접종)을 빨리하라고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

거리두기도 신규 확진자 7천명 발생 상황에서 밀려서 겨우 했다.

정책을 제때 하지 못한 걸 6%에 불과한 미접종자의 책임으로 넘기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로 큰 유행이 오겠지만 방역 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위드코로나라고 하면서 원칙 없이 방역패스를 강화하는 것은 문제다.

의료계 "방역패스, 임신부 등 예외 인정하고 적용시설 줄여야"
◇천병철 "한국은 방역패스 없어도 접종률 높아…불편함 최소화해야"
접종률을 높여야 하고, 일부 방역패스가 방역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접종률이 60∼70% 정도인 나라라면 방역패스로 접종률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방역패스를 시행하지 않아도 굉장히 높은 백신 접종률(5일 기준 12세 이상 2차접종류 90.6%, 18세 이상 93.9%)을 기록한 나라다.

유흥업소 등 일부 시설에는 방역패스가 필요하다고 동의할 수 있으나 청소년이 많이 이용하는 독서실, 생활에 필수적인 마트 등까지 확대하는 것은 불편함과 부작용을 고려했을 때 미접종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다.

청소년에게 백신을 권고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접종을 강제하는 게 확실한 이득인지를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다.

코로나19 관련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연령대(10∼19세 0명)에도 방역패스를 확대하려면 좀 더 설득이 필요하다.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는 추세에 맞춰서 방역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는 3차접종률을 올리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은 마스크 쓰기, 거리두기 등 방역 정책에 잘 따라줬다.

그걸 믿고 접종을 권유하고 권고하는 수준으로 하는 게 합당하지 않나 생각한다.

필수 이용시설에 대한 방역패스도 최소화해야 한다.

방역패스 확인 과정에서도 지금처럼 큰 소리가 나게 해서 무안을 주는 것보다는 다르게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