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건설현장·농어촌 등 외국인력 부족해지며 임금 급등
"코로나19 해소돼도 '값싼 외국인' 시대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
'외국인 베테랑 기술인력 활용' 등 적극적 활용책 제시도

[※편집자 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외국인 인력의 입국이 힘들어지면서 제조, 건설 현장과 농촌 등에서는 외국인 구인난이 심각해지고 임금이 급등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올해도 이러한 현상은 이어질 전망입니다.

'외국인 임금 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현상의 본질과 배경을 살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4편의 기획기사를 차례로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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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임금 인플레] ① 외국인은 저임금?…"이젠 절반의 진실"
"한국에서 일한 지는 3년이 넘었습니다.

공장에서 대표님을 빼면 제가 '최고참'이에요.

월급도 많이 올랐죠"
지난해 말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인 인천 남동인더스파크역 근처에서 만난 파키스탄인 A씨는 "현재 근무하는 인천 남동공단의 한 금형 제조공장에서 최근 작업반장이 됐다"며 "성실히 일한 덕분에 입국 당시보다 월급도 10% 넘게 올랐고, 이번에 직책수당도 추가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2년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우리 제조업과 건설 현장, 농어촌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귀한 몸'으로 대접받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하늘길이 막히면서 국내 체류 외국인이 큰 폭으로 줄어든데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 특성상 한국인 채용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농업, 공업, 어업 등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모든 업종에서 이러한 현상이 본격화하면서 이제 '외국인 임금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외국인 임금 인플레] ① 외국인은 저임금?…"이젠 절반의 진실"
◇ '값싼' 외국인 노동자, 제조업·농어업 떠받쳤다
외국인 노동자가 본격적으로 한국 노동시장에 유입된 것은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부터다.

건설업과 농축산업 등에 외국인 고용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이 법안으로 필리핀, 베트남, 몽골, 태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6개국에서 3천167명이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아 입국했다.

유례없는 대규모 해외 인력의 유입에 실업과 임금조건 악화 등의 우려도 컸지만, 이후 이들은 한국 제조업과 농어업을 지탱하는 '버팀목'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이른바 '3D 업종'으로 불리는 금형·주조·용접·열처리 등의 뿌리산업 제조업은 힘든 일을 기피하는 내국인 대신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회로기판 공장을 20년째 운영해온 한 사업주는 "소음도 심하고 온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현장이라 내국인은 잘 오지도 않고, 일을 해도 1년을 못 버틴다"며 외국인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했다.

젊은이들이 대거 떠나 노인들밖에 남지 않게 된 농촌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손 부족이 극심한 농번기의 주된 인력 공급자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과 농어촌 지역의 수요가 커지면서 외국인 노동자 입국도 급격히 늘어났다.

2012년부터는 매년 5만 명 이상 입국했고,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말 고용허가제 자격으로 체류하는 이주노동자는 27만6천여 명에 달했다.

중국 등 외국 국적 동포들이 건설업이나 제조업 등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 방문취업(H-2)으로 체류하는 사람도 22만6천여 명에 이르렀다.

1만7천여 명은 선원취업(E-10) 비자로 들어와 일했다.

[외국인 임금 인플레] ① 외국인은 저임금?…"이젠 절반의 진실"
◇ 코로나19, 외국인 노동자를 '귀한 몸' 만들다
"5∼6년 전만 해도 불러 쓰면 말도 잘 듣고 눈치껏 알아서 일했죠. 그런데 지금은 싫은 소리, 잔소리라도 하면 그 이튿날 다른 곳으로 바로 가버립니다.

"
문경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김모(65) 씨는 외국인 노동자가 '귀한 몸'이 된 현실을 이렇게 전했다.

2020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과 대우가 확연하게 달라지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각 나라를 잇는 하늘길이 막히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고용허가제 노동자는 2020년 말 23만6천여 명으로 1년 전보다 4만 명이나 줄었다.

방문취업은 15만4천여 명으로 줄어 무려 7만 명 넘게 급감했다.

제조 현장이나 농어촌의 인력 수요는 그대로인데, 인력 공급만 줄어들자 파장은 컸다.

일손을 구하지 못해 생산 물량을 맞추지 못한 제조업체나, 농번기에 들어섰지만 제때 수확을 하지 못한 농가 등이 잇따랐다.

전자부품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이모(50) 사장은 "코로나19 탓에 함께 일하던 외국인 직원이 12명에서 절반으로 줄었는데,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힘들고 박봉'이라는 인식 탓에 내국인 채용은 더 힘들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서라도 이들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전국 최대 규모 인력시장인 서울 남구로역에 있는 인력업체 실장 박모(51) 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예년의 70∼80% 수준으로 줄었다"며 "동시에 이들의 몸값도 20%는 더 뛴 것 같다"고 전했다.

[외국인 임금 인플레] ① 외국인은 저임금?…"이젠 절반의 진실"
◇ "'값비싼' 외국인 노동자, 이젠 뉴노멀 될 수 있어"
지난 2년간 급등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은 올해에도 좀처럼 내려갈 것 같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국내에 입국할 외국인 인력을 늘린다는 방침이지만,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가 각국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더구나 지난해 3분기 미국 숙박·음식·서비스업의 임금이 전년동기 대비 8.1% 급등하는 등 고물가와 임금 급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어서 한국도 그 흐름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값싼' 외국인 노동자를 더는 구하기 힘들게 된 현실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상승과 처우 개선을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로 인정하고, 베테랑 기술인력 양성 등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장모(45) 대표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경력을 쌓으면서 10년 가까이 일하는 베테랑이자, 귀한 직원으로 자리 잡았다"며 "요즘같이 사람 귀한 시대에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일 잘하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장은 "이주노동자의 급여 상승 문제는 공급이 줄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시장 결과"라며 "이 현상을 인정하고 이들을 숙련직 기술자로 양성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과대평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8년 연말정산을 한 외국인 노동자 57만3천여 명의 평균 연봉은 2천590만원으로, 내국인 노동자(3천647만원)보다 1천만원 이상 적었다.

지난 2년간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많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저임금 노동자'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제조 현장 등에 내국인 노동자가 유입될 수 있도록 임금조건이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주노동자 수급난을 겪는 직종의 공통점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이라며 "내국인이 해당 업종에 진출하지 않으려는 원인을 파악하고, 이들이 자연스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이나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