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자들, 확인 안 된 월마트 '신장상품 퇴출' 기정사실 간주해 비난
샘스클럽에 회원탈퇴 신청 줄…인터넷선 '탈퇴 인증샷'도
미 '신장 제품 수입금지법'에 월마트 유탄…불매운동 표적
미국과 중국이 신장(新疆)위구르족자치구 인권 문제를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가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표적이 되면서 '유탄'을 맞고 있다.

29일 인민일보 계열 인터넷 매체 관찰자망 등에 따르면 최근 중국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는 샤먼(廈門), 항저우(杭州) 등 중국 여러 곳의 샘스클럽 매장의 고객센터에서 회원들이 탈퇴 신청을 하려고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샘스클럽은 월마트 계열의 회원제 마트다.

웨이보에서 '샘스클럽 회원카드 반납'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들의 조회 수가 4억에 달할 정도로 샘스클럽 탈퇴 움직임은 중국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일부 샘스클럽 회원은 탈퇴 신청서 사진을 찍어 올려 '탈퇴 인증'을 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서 "샘스클럽이 중국 신장 상품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소비자 역시 샘스클럽에 들어가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신장 상품을 내린 것이 소위 미국의 규칙 준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중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중국인의 감정을 절대로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부 중국 소비자들이 이처럼 불매운동에 나선 것은 월마트가 미국의 신장 제품 수입 금지법 도입에 맞춰 중국 내 월마트와 샘스클럽 매장에서 신장 지역 제품을 고의로 내린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중국 누리꾼이 샘스클럽 전용 애플리케이션 검색창에 '신장'을 검색하면 '죄송합니다.

관련 상품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자가 뜬다면서 월마트가 산하 매장에서 멜론, 건포도, 배, 대추 등 신장 농산물을 고의로 내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월마트 측은 중국 언론에 재고 부족 문제라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일부 중국 누리꾼들은 의혹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불매 운동에 나선 것이다.

월마트가 실제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내부 정책 문제로 신장 상품을 대거 내렸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환구시보(環球時報) 등 일부 중국 매체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더라도 월마트 계열 일부 매장에서 여전히 멜론의 일종인 하미과(哈密瓜)가 팔리는 등 농산물이 절대다수인 신장 상품 판매가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서명한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은 미국 땅에 신장 제품이 수입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법률이다.

월마트가 미국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불매운동 등 큰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중국에서 운영되는 월마트와 샘스클럽 매장에서 신장 제품 구매 거부에 나서야 할 동기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 통과라는 민감한 시점에서 일부 누리꾼의 선동에 가까운 의혹 제기가 여론의 큰 주목을 받고 기정사실처럼 여겨짐에 따라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표적 미국계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불매운동 표적이 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여론 악화 속에서 불매 운동이 장기화할 경우 월마트의 실적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있다.

수많은 토종·외자 업체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중국 유통업계에서 전통적 대형 할인마트인 월마트 사업은 크게 위축되는 추세였지만 프리미엄 마트 이미지를 앞세운 샘스클럽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는 중이었다.

월마트는 현재 33개인 샘스클럽 매장을 2028년까지 1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기에 샘스클럽 회원 탈퇴에 집중된 이번 불매운동 움직임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월마트가 공식적으로 신장 제품 구매 거부를 하지는 않은 상황에서 중국 당국과 관영 매체들은 다소 애매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신화통신, 환구시보 등 핵심 관영 매체들은 정면으로 월마트를 비난하지는 않고 있지만 SNS 계정 등 뉴미디어 매체를 활용해 자국 소비자들의 월마트 불매운동 동향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불매 운동을 방관하고 나아가 은연중에 조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앞서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최근 수년간 민감한 정치·외교적 문제에 휘말려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 표적이 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중국인들은 자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중국의 이익을 해친다고 간주할 때 '중국의 밥을 먹으면서 중국의 솥을 깨는 행동을 한다'(吃中國飯砸中國鍋)는 표현을 동원해 비난하곤 한다.

관영 매체들의 노골적 선동 속에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후 한국의 롯데마트가 강력한 불매 운동에 직면해 결국 사업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는 등 여러 분야의 한국 기업들도 막대한 피해를 봤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3월 신장 면화 불매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관영 매체들의 부추김 속에서 H&M이나 나이키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향한 강력한 불매 운동이 일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