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헌재, 집권당의 사법부 영향력 행사 사실상 허용
유럽연합(EU)이 '법치주의 공방'을 벌이는 회원국 폴란드에 대해 공식적인 법적 제재 절차에 돌입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2일(현지시간) 폴란드 사법부가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EU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해 '공식적인 주의'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는 이날 성명을 통해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EU 조약과 유럽사법재판소(ECJ)의 결정에 불복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EU법 우선주의와 자율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폴란드 정부와 EU는 '사법 통제' 논란을 두고 공방 중이다.
폴란드의 집권당 법과 정의당(PiS)은 2018년 하원이 법관을 인선하는 위원회의 위원을 지명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렇게 되면 여당이 주도하는 하원이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을 터주는 셈이어서 EU가 회원국에 요구하는 사법부 독립과 법치주의,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ECJ가 폴란드 정부의 이 정책이 EU법을 위반했다면서 제동을 걸자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 7월 ECJ 결정과 폴란드 헌법 중 어느 것이 상위법인지를 가린다며 폴란드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폴란드 헌재는 지난 10월 EU의 조약이나 결정보다 폴란드 헌법이 우선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EU 집행위는 "EU법은 헌법을 포함, 개별 회원국의 모든 법보다 상위법"이라며 "ECJ의 모든 결정이 개별 국가의 사법부에 효력을 미친다"고 경고하고 이번에 공식적인 법적 제재 절차를 시작했다.
폴란드 정부는 EU의 해명 요구에 2개월 안에 납득할 만한 답변을 해야하며 EU의 요구에 불응하면 ECJ의 판결에 따라 거액을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EU는 법적인 조치 이외에 보조금을 지렛대로 폴란드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폴란드는 지난해 EU의 순보조금으로 125억 유로(약 17조3천억원)를 받아갔다.
폴란드는 EU 27개 회원국 중 최대 보조금 수혜국이다.
EU 회원국 정상은 지난 7월 코로나19로 타격을 본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7천500억 유로(약 1천4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 기금 마련에 합의했다.
EU는 폴란드의 법치주의 파괴를 이유로 폴란드에 배정된 '코로나 회복 지원금' 지급을 유보했다.
EU의 이 같은 압박에 대해 폴란드 측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EU의 법적 제재 돌입은 EU의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바스티안 칼레타 폴란드 법무차관도 "EU의 행위는 폴란드의 주권과 헌법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지난 10월 EU 지도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EU가 비민주적인 '슈퍼국가'로 변해 회원국의 주권을 짓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EU가 자유롭고 평등한 주권국가의 동맹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하나의 중앙집권기구로 변하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란드는 2004년 EU에 가입하면서 EU 조약을 지키겠다고 서약하고 EU의 경제·정치적 통합을 지지한다고 약속했지만 극우 정당이 집권하면서 EU와 대립각을 세웠다.
극우 성향의 법과 정의당은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데 이어 2019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레흐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쌍둥이 형 야로슬라프 카친스키가 이끄는 이 정당은 서구식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가치보다는 보수 가톨릭과 전통적 가치에 기반한 사회로 '개혁'한다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책을 편다.
카친스키 법과 정의당 대표는 자신이 총리에 직접 나서지 않았지만 사실상 내각과 국정운영을 장악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