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중공업으로 이름 바꿔 새 출발…"위상 재정립, ESG 기업 재도약" 다짐
한때 대한민국 조선업을 대표했던 한진중공업이 32년 굴곡진 역사의 '한진중공업' 간판을 내렸다.

한진중공업은 HJ중공업으로 회사 이름을 변경한다고 22일 밝혔다.

1989년 한진그룹에 편입하며 한진중공업으로 상호를 바꾼 지 32년이다.

한진중공업 둥지인 부산 영도조선소는 대한민국 조선 1번지로 불릴 만큼 대한민국 조선 발전사와 맥을 같이한다.

영도조선소를 거점으로 1937년 우리나라 최초로 강선을 제작한 조선중공업이 한진중공업 전신이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 군함을 제작하기도 했던 조선중공업은 해방 후 우여곡절 끝에 1963년 공기업 형태인 대한조선공사로 재출발했고, 1968년 대한조선공사라는 이름을 유지한 채 민영화했다.

민영화한 대한조선공사는 조선뿐만 아니라 기계 플랜트, 건설, 철도차량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세계 해운 및 조선 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하고 1989년 한진그룹으로 주인이 바뀌며 회사 이름도 한진중공업으로 변경했다.

한진중공업은 10년만인 1999년 회사정리절차 종결 결정을 받아 법정관리에서 해제됐고, 코리아타코마조선공업, 한진종합건설, 한진건설 등을 흡수하는 등 또다시 몸집을 키워나갔다.

한때 조선 부문과 건설 부문 활황에 힘입어 거침없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도심에 위치한 영도조선소 확장성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7년엔 필리핀 수빅에 초대형 조선소도 설립, 세계 조선업계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또다시 덮친 글로벌 불황 여파를 견디지 못한 채 적자에 허덕이다 2016년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했고, 2019년엔 수빅조선소마저 현지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완전 자본잠식에 빠지고 말았다.

굴곡진 역사만큼 한진중공업은 경영 외적으로도 숱한 논란의 역사를 남겼다.

한진그룹 계열분리 과정에서의 벌어진 한진가 형제간 골육상쟁이 대표적이다.

첫째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셋째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비롯한 4명의 형제가 지분을 놓고 펼친 막장 드라마는 아직 경제계 뒷담화로 이야기되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로까지 불렸던 각종 노사분규도 빼놓을 수 없다.

노조와의 극한 대립 속에 빚어졌던 사건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시신 탈취극이란 어이없는 일까지 벌였던 박창수 노조위원장 의문사(1991년), 김주익 노조위원장 크레인 자살 사건, 곽재규 조합원 사망 사건(2003년),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 갈등을 상징하는 희망버스(2011년), 최강서 조합원 자살(2012년) 등이 모두 한진중공업 노동 현장에서 빚어진 사건들이다.

우리나라 첫 여성 조선 용접공 김진숙 씨가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30여 년째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업장도 한진중공업이다.

올해 4월 산업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은 조선 주력 업체도 아닌 건설업체 동부건설을 주축으로 하는 컨소시엄에 조선소를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조선 1번지 '영도조선소 폐쇄'를 우려한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이 반대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매각은 강행됐다.

그로부터 8개월가량 지나 한진중공업이란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HJ중공업 측은 "기존 사명인 한진중공업 정통성과 연상 효과를 잃지 않기 위해 HJ란 이름으로 새 출발 한다"며 "종합 중공업 기업으로서 위상을 재정립하고 인수합병 이후 지속 성장이 가능한 ESG 기업으로 재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HJ중공업이 추락한 한진중공업의 이리저리 꼬인 역사를 청산하고 부산 조선산업 위상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김진숙 복직건 등 한진중공업 시절 매듭짓지 못한 노동 흑역사도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