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최저임금의 역설?…호주는 왜 임금착취가 만연한 나라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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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시급 1만7천 원이지만…"외국인 노동자는 절반밖에 못 받아"
유학생·워홀러 임금착취 빈발…언어 장벽에 현지 법·제도 무지
세계에서 가장 최저임금이 높은 나라로 꼽히는 호주에서 노동자를 상대로 한 임금착취 문화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호주 공영 ABC 방송은 장기간의 탐사 취재를 통해 호주 내에 만연한 임금착취 혹은 '현대판 노예' 문제를 고발하면서 이 같은 사례가 전국적으로 약 1만5천 건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매년 1만∼2만 명에 달하는 한국 젊은이들도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호주에서 단기 취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호주인들은 우리가 무보수로 일하는 것 몰라"
ABC는 20일 이민 알선업체 소개로 2019년 호주로 건너온 중국인 매디와 제임스(가명) 부부의 사례를 소개했다.
중국에서 10년 이상 숙박업종에 종사하던 이들은 10만 달러(약 1억2천만 원)를 내면 현지 취업비자(일명 482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업체의 말을 믿고 호주로 건너왔다.
처음에는 경력을 살려 호주 숙박업소에서 관리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영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설거지나 방 청소 같은 허드렛일밖에 할 수 없었고, 그나마도 무보수였다.
애초 6개월이라던 무보수 근로 기간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2년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취업비자로 열심히 일하면 나중에 호주 영주권을 딸 수 있다는 업체의 말을 믿고 견뎠다.
매디는 "그들은 우리를 교묘히 조종하고 있었다"며 "알선업체와 고용주는 조금만 더 참고 조용히 있으면 영주권을 딸 수 있다고 반복해서 얘기했다"고 말했다.
매디는 처음에는 모든 호주인이 자신들처럼 초과 근무를 하고도 아무런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줄 알았다.
차츰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 매디가 알선업체와 고용주에게 문제를 제기하자 그들은 매디 부부에게 문제를 까발리면 추방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
돈을 주고 취업비자를 취득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매디는 "아무도 우리가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고용주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악덕 고용주 밑에서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동안 매디 부부는 건강과 돈, 희망을 모두 잃었지만 자신들이 호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는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면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들은 결국 호주의 노사문제 감독·중재기관인 공정근로옴부즈맨(FWO)과 변호사에게 자신들의 노동착취 사례를 신고했고, 내년 고용심판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ABC는 호주 당국의 관심을 받게 된 매디와 제임스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며, 전국적으로 약 1만5천 건으로 추산되는 심각한 임금착취와 현대판 노예제 피해자의 5명 중 1명만이 당국에 적발된다고 전했다.
또 매년 많은 이민자가 호주 이민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호주 땅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이 시스템을 통해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가 없다고 ABC는 덧붙였다.
◇ 호주 최저시급 1만7천원 넘지만…외국인 노동자에겐 딴 나라 얘기
지난달 말 기준 호주의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20.33호주달러(약 1만7천 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단기 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적용되는 임시직 노동자의 시급은 이보다 25%가 더 높다.
하지만 배낭 여행객에서 유학생에 이르기까지 ABC가 인터뷰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평균 12호주달러 이하의 시급을 받고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많은 외국인 이민자들은 호주 시민권자가 된 뒤에도 언어적 장벽이나 관련 법규 또는 제도에 대한 무지 때문에 계속 임금착취를 당하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ABC는 지적했다.
ABC가 지난 8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임금착취 사례를 알려달라는 질문에 한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이용자는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는 사업체를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매년 1만∼2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 워홀러들도 호주에서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워홀은 만 18∼30세 젊은이들이 최장 1년간 외국에서 일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일종의 관광취업비자 제도다.
한국은 1995년 호주를 시작으로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홍콩, 영국 등 20여개국과 워홀 협정을 체결했는데, 인원수 제한이 없고 영어권인 호주가 가장 인기다.
2018∼2019년 호주 시드니에서 워홀 경험을 했다는 윤모(27) 씨는 21일 "시드니 외곽 한인타운의 한 카페에서 시급 12호주달러를 받고 소위 '캐시잡'을 했다"며 "시급을 20호주달러 넘게 준다는 한인 가게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캐시잡'이란 세금 등을 회피하기 위해 거래 근거가 남지 않도록 고용주가 직원에게 임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법정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주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당국에 이를 들키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다.
윤 씨는 "영어도 잘 못하고 현지 제도도 잘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며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절대 약자일 수밖에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주 내 광범위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임금착취 행위는 주기적으로 당국에 적발돼 철퇴를 맞고 있다.
이달 초에는 호주 양대 슈퍼마켓 체인인 콜스가 2017년 1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직원 7천500명에게 1억1천500만 호주달러(약 976억 원)의 임금을 덜 지급한 혐의로 FWO에 적발됐다.
앞서 2015년에는 호주 최대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이 유학생 등 직원들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만을 지급하며 임금착취를 일삼아온 사실이 적발돼 호주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결국 세븐일레븐은 임금착취를 당한 전·현직 직원 2천832명에게 1억1천70만 호주달러(약 940억 원)를 보상해야 했고, 러셀 위더스 회장과 워런 윌모트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은 줄사퇴했다.
2016년 5월에는 시드니에서 패스트푸드 체인을 운영하는 한인 업주가 10명의 한국인 워홀러에게 총 10만9천 호주달러(약 9천500만 원)를 덜 지급하고 급여 명세서를 조작한 혐의로 FWO에 의해 법정에 넘겨졌다.
같은 해 7월에는 시드니 도심에서 요구르트 체인을 운영하는 업주가 한국인 워홀러 4명에게 초기에는 교육을 명목으로 시간당 8호주달러(약 7천 원)를, 이후에는 시간당 11호주달러(약 9천600원)를 지급하다 당국에 의해 고발됐다.
윤 씨는 "ABC와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주요 언론의 집중 고발로 점차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호주 사회에 만연한 임금착취 구조의 뿌리가 워낙 깊어 완전히 근절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유학생·워홀러 임금착취 빈발…언어 장벽에 현지 법·제도 무지
세계에서 가장 최저임금이 높은 나라로 꼽히는 호주에서 노동자를 상대로 한 임금착취 문화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호주 공영 ABC 방송은 장기간의 탐사 취재를 통해 호주 내에 만연한 임금착취 혹은 '현대판 노예' 문제를 고발하면서 이 같은 사례가 전국적으로 약 1만5천 건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매년 1만∼2만 명에 달하는 한국 젊은이들도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호주에서 단기 취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호주인들은 우리가 무보수로 일하는 것 몰라"
ABC는 20일 이민 알선업체 소개로 2019년 호주로 건너온 중국인 매디와 제임스(가명) 부부의 사례를 소개했다.
중국에서 10년 이상 숙박업종에 종사하던 이들은 10만 달러(약 1억2천만 원)를 내면 현지 취업비자(일명 482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업체의 말을 믿고 호주로 건너왔다.
처음에는 경력을 살려 호주 숙박업소에서 관리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영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설거지나 방 청소 같은 허드렛일밖에 할 수 없었고, 그나마도 무보수였다.
애초 6개월이라던 무보수 근로 기간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2년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취업비자로 열심히 일하면 나중에 호주 영주권을 딸 수 있다는 업체의 말을 믿고 견뎠다.
매디는 "그들은 우리를 교묘히 조종하고 있었다"며 "알선업체와 고용주는 조금만 더 참고 조용히 있으면 영주권을 딸 수 있다고 반복해서 얘기했다"고 말했다.
매디는 처음에는 모든 호주인이 자신들처럼 초과 근무를 하고도 아무런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줄 알았다.
차츰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 매디가 알선업체와 고용주에게 문제를 제기하자 그들은 매디 부부에게 문제를 까발리면 추방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
돈을 주고 취업비자를 취득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매디는 "아무도 우리가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고용주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악덕 고용주 밑에서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동안 매디 부부는 건강과 돈, 희망을 모두 잃었지만 자신들이 호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는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면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들은 결국 호주의 노사문제 감독·중재기관인 공정근로옴부즈맨(FWO)과 변호사에게 자신들의 노동착취 사례를 신고했고, 내년 고용심판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ABC는 호주 당국의 관심을 받게 된 매디와 제임스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며, 전국적으로 약 1만5천 건으로 추산되는 심각한 임금착취와 현대판 노예제 피해자의 5명 중 1명만이 당국에 적발된다고 전했다.
또 매년 많은 이민자가 호주 이민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호주 땅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이 시스템을 통해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가 없다고 ABC는 덧붙였다.
◇ 호주 최저시급 1만7천원 넘지만…외국인 노동자에겐 딴 나라 얘기
지난달 말 기준 호주의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20.33호주달러(약 1만7천 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단기 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적용되는 임시직 노동자의 시급은 이보다 25%가 더 높다.
하지만 배낭 여행객에서 유학생에 이르기까지 ABC가 인터뷰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평균 12호주달러 이하의 시급을 받고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많은 외국인 이민자들은 호주 시민권자가 된 뒤에도 언어적 장벽이나 관련 법규 또는 제도에 대한 무지 때문에 계속 임금착취를 당하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ABC는 지적했다.
ABC가 지난 8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임금착취 사례를 알려달라는 질문에 한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이용자는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는 사업체를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매년 1만∼2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 워홀러들도 호주에서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워홀은 만 18∼30세 젊은이들이 최장 1년간 외국에서 일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일종의 관광취업비자 제도다.
한국은 1995년 호주를 시작으로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홍콩, 영국 등 20여개국과 워홀 협정을 체결했는데, 인원수 제한이 없고 영어권인 호주가 가장 인기다.
2018∼2019년 호주 시드니에서 워홀 경험을 했다는 윤모(27) 씨는 21일 "시드니 외곽 한인타운의 한 카페에서 시급 12호주달러를 받고 소위 '캐시잡'을 했다"며 "시급을 20호주달러 넘게 준다는 한인 가게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캐시잡'이란 세금 등을 회피하기 위해 거래 근거가 남지 않도록 고용주가 직원에게 임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법정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주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당국에 이를 들키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다.
윤 씨는 "영어도 잘 못하고 현지 제도도 잘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며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절대 약자일 수밖에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주 내 광범위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임금착취 행위는 주기적으로 당국에 적발돼 철퇴를 맞고 있다.
이달 초에는 호주 양대 슈퍼마켓 체인인 콜스가 2017년 1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직원 7천500명에게 1억1천500만 호주달러(약 976억 원)의 임금을 덜 지급한 혐의로 FWO에 적발됐다.
앞서 2015년에는 호주 최대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이 유학생 등 직원들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만을 지급하며 임금착취를 일삼아온 사실이 적발돼 호주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결국 세븐일레븐은 임금착취를 당한 전·현직 직원 2천832명에게 1억1천70만 호주달러(약 940억 원)를 보상해야 했고, 러셀 위더스 회장과 워런 윌모트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은 줄사퇴했다.
2016년 5월에는 시드니에서 패스트푸드 체인을 운영하는 한인 업주가 10명의 한국인 워홀러에게 총 10만9천 호주달러(약 9천500만 원)를 덜 지급하고 급여 명세서를 조작한 혐의로 FWO에 의해 법정에 넘겨졌다.
같은 해 7월에는 시드니 도심에서 요구르트 체인을 운영하는 업주가 한국인 워홀러 4명에게 초기에는 교육을 명목으로 시간당 8호주달러(약 7천 원)를, 이후에는 시간당 11호주달러(약 9천600원)를 지급하다 당국에 의해 고발됐다.
윤 씨는 "ABC와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주요 언론의 집중 고발로 점차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호주 사회에 만연한 임금착취 구조의 뿌리가 워낙 깊어 완전히 근절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