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따끈한 손두부에 이웃사랑 담아낸 양동섭씨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7년간 매달 첫째주 수요일 동네 어르신 모아 음식 대접
회사 부도 후 친구들 도움받아 차린 가게…"최대한 나눠야" "주변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가게인 만큼 저도 최대한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인천시 남동구에서 두부요리점을 운영하는 양동섭(56)씨는 2014년부터 7년째 매달 첫째 주 수요일마다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따뜻한 한끼를 대접하고 있다.
양씨는 정성껏 준비한 순두부와 청국장찌개를 노인들이 든든히 먹고나서 가게를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같은 선행이 입소문을 타면서 당초 60인분에 맞춰 준비하던 식사는 어느새 150인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찾는 이들이 늘었다.
하지만 양씨는 "가게 직원들을 비롯해 지인들이 좋은 뜻에 동참하다 보니 방문 인원이 늘어도 전혀 부담이 없다"며 "자원봉사자 3∼4명도 매번 가게를 찾아 일손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매장 이용에 제한이 생겨 빵과 라면 등의 식사 꾸러미를 제공하고 있지만, 당일이 되면 어김없이 가게 앞은 북적거린다.
양씨는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가게 앞에 모여 계시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얼른 음식을 드리고 돌려보낸다"며 "최대한 알차게 구성하려고 고민하는데 아무래도 직접 음식을 대접할 때보단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양씨가 오랜 기간 이웃사랑을 실천한 이유는 '3만시'라고 불리는 가게 별칭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단돈 3만원만 가지고 시작한 가게라는 뜻이다.
그는 가난했던 시절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지원을 해준 덕에 가게를 차린 만큼 대가 없는 도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양씨는 과거 남동공단에서 산업용 기계 판매업체를 운영하다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큰 빚을 떠안게 됐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새로운 직장을 얻었으나, 이곳 회사마저 경영난을 겪으면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양씨의 친구들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가 장사를 시작해보겠다며 언뜻 내비친 말도 흘려듣지 않았다.
양씨는 "청량산에 오를 적 친구가 챙겨온 두부를 맛있게 먹은 경험이 지금 가게를 시작한 계기였다"면서 "막연한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친구들이었다"고 말했다.
건설업자인 한 친구는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양씨 가게의 기반을 만들어줬고, 다른 친구는 각종 주방용품을 지원해줬다.
또 다른 친구는 모친이 알고 있는 전통 방식의 두부 제조법을 양씨가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양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지금까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마법 같은 가게라고 말한다"며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가게가 주변의 도움으로 2004년부터 17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성과급 형태로 직원들과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또 탈북민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직접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사회 적응을 돕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양씨는 현재 월드비전과 옥스팜, 세이브더칠드런 등 6개 단체에 매달 정기 후원도 하고 있다.
양씨는 19일 "가장 밑바닥까지 경험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남에게 베푸는 것이 나에겐 최고의 가치가 됐다"며 ""어차피 '내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나누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회사 부도 후 친구들 도움받아 차린 가게…"최대한 나눠야" "주변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가게인 만큼 저도 최대한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인천시 남동구에서 두부요리점을 운영하는 양동섭(56)씨는 2014년부터 7년째 매달 첫째 주 수요일마다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따뜻한 한끼를 대접하고 있다.
양씨는 정성껏 준비한 순두부와 청국장찌개를 노인들이 든든히 먹고나서 가게를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같은 선행이 입소문을 타면서 당초 60인분에 맞춰 준비하던 식사는 어느새 150인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찾는 이들이 늘었다.
하지만 양씨는 "가게 직원들을 비롯해 지인들이 좋은 뜻에 동참하다 보니 방문 인원이 늘어도 전혀 부담이 없다"며 "자원봉사자 3∼4명도 매번 가게를 찾아 일손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매장 이용에 제한이 생겨 빵과 라면 등의 식사 꾸러미를 제공하고 있지만, 당일이 되면 어김없이 가게 앞은 북적거린다.
양씨는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가게 앞에 모여 계시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얼른 음식을 드리고 돌려보낸다"며 "최대한 알차게 구성하려고 고민하는데 아무래도 직접 음식을 대접할 때보단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양씨가 오랜 기간 이웃사랑을 실천한 이유는 '3만시'라고 불리는 가게 별칭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단돈 3만원만 가지고 시작한 가게라는 뜻이다.
그는 가난했던 시절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지원을 해준 덕에 가게를 차린 만큼 대가 없는 도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양씨는 과거 남동공단에서 산업용 기계 판매업체를 운영하다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큰 빚을 떠안게 됐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새로운 직장을 얻었으나, 이곳 회사마저 경영난을 겪으면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양씨의 친구들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가 장사를 시작해보겠다며 언뜻 내비친 말도 흘려듣지 않았다.
양씨는 "청량산에 오를 적 친구가 챙겨온 두부를 맛있게 먹은 경험이 지금 가게를 시작한 계기였다"면서 "막연한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친구들이었다"고 말했다.
건설업자인 한 친구는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양씨 가게의 기반을 만들어줬고, 다른 친구는 각종 주방용품을 지원해줬다.
또 다른 친구는 모친이 알고 있는 전통 방식의 두부 제조법을 양씨가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양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지금까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마법 같은 가게라고 말한다"며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가게가 주변의 도움으로 2004년부터 17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성과급 형태로 직원들과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또 탈북민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직접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사회 적응을 돕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양씨는 현재 월드비전과 옥스팜, 세이브더칠드런 등 6개 단체에 매달 정기 후원도 하고 있다.
양씨는 19일 "가장 밑바닥까지 경험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남에게 베푸는 것이 나에겐 최고의 가치가 됐다"며 ""어차피 '내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나누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