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애국주의 품에 안긴 중국영화 거장들
지난 7월 베이징 주재 특파원으로 부임한 필자는 1990년대부터 좋아했던 중국 영화의 거장, 천카이거(69)와 장이머우(71)가 아직 쟁쟁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1993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었던 천 감독의 '패왕별희'는 고인이 된 장궈룽(張國榮·장국영·1956∼2003)의 경극 배우 연기 때문에, 그리고 장 감독의 '인생(원제 活着)'은 1994년 칸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거여우(葛優·갈우)의 도박중독자 연기로 인해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천카이거와는 지난 10월초, 그가 공동 연출을 맡은 항미원조(抗美援朝·중국의 6·25전쟁 참전을 의미) 영화 '장진호(長津湖)'를 베이징의 한 개봉관에서 관람하며 '재회'했다.

그리고 장이머우는 내년 춘제(春節·중국의 설)때 개봉예정인 '저격수'라는 또 하나의 항미원조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됐다.

20대때 봤던 '패왕별희'와 '인생'의 코드가 '역사 속의 개인'이라면, 특파원 부임후 접했거나 곧 접할 두 감독 작품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코드는 '애국', 다시 말하면 '국가'다.

한국에도 이른바 '국뽕'으로 불리는 애국주의 영화들이 적지 않은 터에 중국 거장들의 애국주의 영화에 대해 '삐딱하게'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청년시절의 필자뿐 아니라 세계인을 감동케 한 패왕별희, 인생과 같은 작품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지울 수 없다.

'패왕별희'와 '인생'은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을 배경으로 해서 역사의 바람 앞에 촛불 같았던 인생들을 그려냈다.

중국 현대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공감할 '보편성'이 있었기에 세계 영화제와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두 작품 역시 중국 내에서 일시적 또는 지속적 상영금지 등 '된서리'를 맞았지만 그나마 제작은 될 수 있었던 반면,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제작조차 쉬운 일이 아닐듯 싶다.

이른바 '문화계 홍색정풍'과 애국주의 바람이 거세기 때문이다.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는 쇼트 클립(짧은 동영상)조차도 '중국 특색 사회주의 제도에 위해가 되는 내용'은 검열의 칼날을 피할 수 없는 지금 중국내 영화 투자자와 제작사, 감독, 배우 등이 민감한 소재 앞에서 '의기투합'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중국은 경제, 군사 등 다방면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소프트파워'만큼은 아직 미국과 거리가 있다는 게 중평이다.

결국은 '보편가치'의 싸움이 될 소프트파워 경쟁에서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중국이 '수치'로 미국을 제압하더라도 진정한 세계의 리더가 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중국의 장구한 문명사와, 그 역사를 살아간 개인의 숨결을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중국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되길 소망해 본다.

[특파원 시선] 애국주의 품에 안긴 중국영화 거장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