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규제 여파로 대출 금리가 기준금리 상승세보다 빠르게 오르는 등 수요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대출 상품 현수막이 내걸린 서울의 한 시중은행.  한경DB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규제 여파로 대출 금리가 기준금리 상승세보다 빠르게 오르는 등 수요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대출 상품 현수막이 내걸린 서울의 한 시중은행. 한경DB
금융당국이 내년부터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키로 한 것은 올 하반기 들어 시행한 강도 높은 총량 관리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집값도 주춤하고 가계 대출 증가세는 한풀 꺾였지만, 은행에 이어 2금융권마저 대출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중산·서민층의 실수요 대출마저 타격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년부터 2억원 이상 주택담보대출 등에 대해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되는 등 다른 장치로 충분히 총량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총량 목표 자체는 유효”

고승범 금융위원장
고승범 금융위원장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출 총량 관리를 당분간 지속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내년에는 차주 단위 DSR 규제 등 체계적인 시스템 관리가 시행되기 때문에 총량 관리 목표를 정하더라도 올해보다는 훨씬 유연한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1월부터 규제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에서 시가 6억원 이하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더라도 기존 대출과 신규 대출의 합계액이 2억원을 넘으면 DSR 40% 규제가 적용된다. 내년 7월부터는 2억원이 아닌 1억원만 초과해도 DSR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지금은 시가 6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경우에만 DSR을 40%로 제한하고 있다.

서민대출 절벽에 내년 총량 규제 완화…중금리 대출은 한도서 제외
DSR은 주담대와 신용대출, 카드론 등 차주의 모든 가계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즉 1년간 내는 총대출액 원리금 합계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만 신규 대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연소득이 4000만원이고 3000만원 한도 마이너스통장(신용대출)을 갖고 있는 무주택 직장인이 조정대상지역에서 6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면 지금은 담보인정비율(LTV) 50%에 해당하는 3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내년 1월부터 1억7000만원으로 확 줄어든다. 2금융권에서도 DSR 기준이 강화된다. 은행은 40%로 변동이 없지만 △보험(70%→50%) △상호금융(160%→110%) △카드(60%→50%) △캐피털(90%→65%) △저축은행(90%→65%) 등 대부분의 업권에서 기준선이 하향 조정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DSR 규제가 확대되면 상환능력만큼 빌리는 관행이 정착될 것”이라며 “올해처럼 무리한 총량 규제를 하지 않더라도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인 연 4~5% 수준에서 안정적인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 대비 대출이 많은 사람일수록 추가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만큼 각 금융사의 총량관리가 수월해질 것이란 설명이다.

“서민·실수요자 지원 확대”

서민·실수요자 대출은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금융위는 중금리 대출과 정책 서민금융 상품을 총량 규제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이달 중 최종 확정한다. 또 올해 32조원 규모였던 중금리 대출을 내년엔 35조원으로 확대하고, 햇살론 등 정책서민금융도 올해 9조6000억원에서 10조원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지난 9월 도입한 ‘서민우대 보금자리론’을 내년에도 꾸준히 공급한다. 주택금융공사가 취급하는 고정금리 주담대인 보금자리론에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서민·실수요자에게 대출 금리를 0.1%포인트 추가로 깎아주는 방식이다. 주금공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는 ‘u보금자리론’ 금리는 연 3.10%(만기 10년)∼3.40%(만기 40년)다. 주택 가격이 시가 5억원(지방 3억원) 이하이며 부부 합산소득 4500만원 이하면 서민우대 보금자리론을 신청할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취해진 특단의 신용완화 국면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시장금리 상승 흐름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도 “소득·신용이 충분하지 않은 취약 계층이 급격한 상환 부담 확대에 노출되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호기/정소람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