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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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최대 계파가 친문(친문재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18년과 2020년 대표 경선에서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018년 친문 이해찬 전 의원이, 2020년엔 친문을 등에 업은 이낙연 전 대표가 당권을 거머쥐었다. 대표 경선에 나선 친문 후보들은 물론 비문 후보들도 ‘문팬(문재인 팬덤)’에 눈도장 찍기 경쟁에 치중하면서 대표 경선은 맥빠지게 진행됐다.

그런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전당대회에서 비(非)문계로 분류된 송영길 대표가 당선되면서다. 물론 친문표가 홍영표·우원식 후보로 흩어진 덕을 보긴 했지만 송 대표의 당선은 그간 당권을 장악한 친문에 이상 기류가 생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제 대선 경선전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면서 최대 계파인 친문(친문재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최대 관심사가 됐다. 송 대표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친문 장악=당 대선 후보 당선’ 등식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 174명 가운데 친문은 절반이 훌쩍 넘고 이 가운데 이른바 친문의 핵심인 ‘찐문(진짜 친문)’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친문계 의원들의 몸값이 높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각 후보 캠프의 영입 1순위다. 하지만 친문계 의원들도 고민은 있다. 친문계를 대표하는 유력 대선 주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모두 친문의 핵심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김두관 의원도 친문계이지만 지지율이 낮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적어도 범친문계 의원들은 이제 각자도생에 들어갔다. 그간 친문계와 반대쪽 중심부에 있던 이재명 경기지사 쪽으로 상당수 친문계 의원들이 옮겨 간 게 눈에 띈다. 2017년 대선 경선 때 이 지사 스스로 인정했듯이 이 지사는 특유의 강한 화법으로 문재인 후보를 매몰차게 몰아세워 친문의 공적 1호가 됐다. 그 이후 이 지사는 친문의 끊임없는 견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지지율이 깡패’라는 선거판 철칙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찬 전 대표 등은 ‘반문’ 이재명 캠프로

친문계 좌장인 이해찬 전 대표가 이 지사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이 지사 세력화의 전초 기지는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 포럼’이다. 친문 핵심인 진성준 의원과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이용선·민형배·김승원·박상혁·이원택 의원 등이 이 포럼에 가입해 이 지사를 돕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백혜련·송재호·이형석 의원 등도 이 지사의 조력자다. 이 지사 캠프의 한 인사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상당수 친문계 의원들이 음으로 양으로 이 지사의 우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금도 캠프의 문을 두드리는 친문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이 지사도 최근 친문 끌어안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7월)12일 수도권 단체장 회의 참석차 청와대에 갔는데 문 대통령이 회의가 끝나고 집무실에서 차 한 잔을 주시더라”고 했고 문 대통령 아들 준용 씨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이 지사를 도와 온 정성호·김영진·김병욱·이규민·임종성 의원 등에 노웅래·김남국·김한정·문진석·박정·김윤덕·이동주 의원 등이 가세하면서 이재명계는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최다를 자랑한다.

그렇다면 이 지사가 일반 당원과 책임 당원 중 ‘문팬’의 지지까지 끌어올 수 있을까. 이 지사의 지지율이 20% 대 박스권에 묶여 있는 것이 한계로 꼽힌다. 이재명 대세론을 확고히 해 문팬의 지지를 확 끌어올려면 지지율이 30%대로 치고 올라가야 하지만 정체 현상을 빚고 있다.

한 여론 조사 전문가는 “문팬 지지층 중 일정부분을 끌어당기기 위해선 이재명 아니면 안 되겠다는 기류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지지율 30%대를 뚫고 올라가 배드왜건(이길 가능성이 큰 후보에 지지율이 쏠리는 현상)을 타는 게 필수인데 그러지 못하면서 문팬들도 주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지사 측도 고민이 있다. 너무 친문 쪽으로 쏠리게 되면 중도층의 지지를 잃을 수 있어 본선에 나갔을 때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 캠프는 요즘 화색이 돌고 있다.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원톱’을 형성하면서 ‘어대낙(어짜피 대표는 이낙연)’이라는 얘기가 회자될 정도로 높던 지지율이 지난해 말부터 빠지기 시작하면서 상반기 내내 한 자릿수를 맴돌다가 최근 치고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지사와 양강 구도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캠프 관계자는 “지지율이 상승 기류를 타면서 캠프의 문을 두드리는 의원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친문계 박광온·최인호·정태호 의원이 이 전 대표 캠프에 합류했다.

이 전 대표 측은 이른바 ‘문심(문대통령 마음) 마케팅’에도 적극 나서면서 이 지사 견제에 나섰다. 이 전 대표 측 정무실장을 맡고 있는 윤영찬 의원은 “이 지사가 (대선에) 성공한다면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 계승이냐 아니면 이재명 1기냐는 의구심이 지지자들 사이에 굉장히 넓게 퍼져 가고 있다”고 했다. 이 전 대표가 친문 적통이라는 뜻이다.

정세균 전 총리 측 친문 인사로는 서영교·전재수·강득구·김민철 의원 등이 꼽힌다. 정 전 총리도 ‘적통론’을 내세우고 있다. 자신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정신을 이은 민주당의 적자라는 것이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표를 모두 겨냥한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여전히 중립을 지키고 있는 의원은 30여 명 정도 된다. 각 주자들은 이들뿐만 아니라 의원 못지 않게 각 지역구에서 경선에 영향력을 미칠 당원협의회 위원장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文 대통령 복심 임종석·윤건영 등 선택이 변수

관건은 친문의 핵심 중 핵심으로 꼽히는 이른바 문 대통령 직계 친위대의 움직임이다. 이들을 통해 문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문 ‘부엉이 모임’의 핵심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과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은 내각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의 복심 중 복심으로 꼽히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과 관련, 대법원이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고 재수감됨에 따라 선거 영향력을 잃게 됐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그런 점에서 임종석 전 비서실장, 윤건영 민주당 의원 등 다른 ‘대통령 복심’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이들은 친문 골수 지지층인 ‘문팬’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들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경선 막판에 움직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친문계인 한 민주당 의원은 “이들은 정권 재창출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관망하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지지 기준은 친문-비문 주자가 아니라 누가 문재인 정부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할 수 있느냐를 따져 힘을 몰아주지 않겠느냐”고 했다.

물론 당 대선 경선이 특정 계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데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다. 계파에 의존하다 보면 역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심’과 ‘민심’이 일치하지 않는데도 ‘문심’만 따를 땐 ‘민심’을 잃을 수도 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그런 점에서 당 경선과 본선은 다를 수 있다”며 “정권 말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떨어진다면 본선 주자는 청와대와 거리를 두는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