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배출량 매년 늘지만, 처리시설 확충은 다들 '나 몰라라'
10년 내 매립지 확충 못 하면 전국 매립지 '포화상태' 돌입
주민 반대로 소각장 확충도 지지부진…"머리 맞대고 합의 끌어내야"
[※편집자 주: 쓰레기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많이 처리되기는 했지만, 전국 곳곳에 불법 폐기물이 쌓인 '쓰레기산'이 400곳 가까이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쓰레기 버릴 곳을 찾지 못해 서울, 인천, 경기도 등 지자체들이 심각한 분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가히 '쓰레기 대란'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쓰레기 처리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합의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합뉴스는 '쓰레기 대란'을 다룬 6편의 기획기사를 차례로 송고합니다]
[쓰레기 대란]① "쓰레기 버릴 곳 없어"…10년 내 '쓰레기 대란' 온다
탐사보도팀 = 기묘한 풍경이었다.

바다와의 경계가 되는 해안 제방 바로 옆 육지에 채석장처럼 거대한 구덩이가 파헤쳐져 있었다.

구덩이의 중심이자 가장 깊은 곳에선 분주히 움직이는 굴착기 두 대가 벌이는 쓰레기 매립 작업이 한창이었다.

하루 4천t 가까운 산업폐기물이 처리되는 부산시의 유일한 산업폐기물 처리시설 '부산그린파워'의 모습이었다.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매립지 전체가 청록색과 검은색의 비산(飛散) 먼지 차단망으로 덮여있었다.

그 너머 병풍처럼 자리 잡은 밋밋한 색감의 산업단지와 자못 대비를 이뤘다.

이 시설은 4년 뒤면 운영이 종료된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건설 중인 시설은 아직 없다.

이대로 2025년 운영을 종료하면 부산에서 산업 폐기물을 처리할 시설은 사실상 사라지고 만다.

앞으로 10년 내 전국에 닥칠 '쓰레기 대란'의 단적인 실례를 부산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 쓰레기 배출은 갈수록 늘지만…처리시설 마련은 다들 '나 몰라라'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심지 중 하나인 부산에는 28개 산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조성 중이거나 계획 중인 산업단지까지 합하면 그 수는 42개까지 늘어난다.

이미 부산에서 발생하는 산업폐기물의 양은 하루 평균 4천t에 육박하지만, 산업단지가 더 늘어나면 배출되는 폐기물의 양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산 내 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은 부산 강서구에 있는 부산그린파워 단 한 곳뿐이다.

이마저도 2025년이면 운영이 종료된다.

원래는 기장군에도 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이 한 곳 더 있었지만 지난 2019년 운영을 종료했다.

산업단지는 갈수록 늘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폐기물을 처리할 시설은 되레 줄어든 것이다.

더구나 부산그린파워는 민간시설이다.

공공시설과 달리 수익성이 없으면 폐기물을 받지 않는다.

산업단지는 많은데 처리시설은 한곳이다 보니, 부산그린파워는 매립단가가 높은 폐기물만 선별해 받는 '배짱 영업'을 한다.

단가가 낮은 폐기물은 사업주들이 웃돈을 주고 경북, 충청 등 다른 지역까지 운송해 처리해야 한다.

[쓰레기 대란]① "쓰레기 버릴 곳 없어"…10년 내 '쓰레기 대란' 온다
그 결과 2019년 부산에서 배출되는 산업폐기물 중 25%만이 부산 내에서 처리됐다.

원래 1t에 평균 4만원 가량이던 처리비용은 최근 2년 새 4배 가까이 급등해 t당 15만원으로 뛰어올랐다.

높아진 처리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일부 사업주는 몰래 야산이나 공터에 폐기물을 불법 투기한다.

폐기물 처리시설 확충이 절실하지만, 추진은 제자리걸음이다.

부산시는 2014년부터 기장군에 폐기물처리장 건립을 추진했지만, 지역 주민의 반발로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인허가와 주민수용 등의 과정을 거치려면 운영 시작까지 5년 이상이 걸린다.

쓰레기 대란을 막을 '골든타임'을 이미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시의회 도시환경위원회 고대영 위원장은 "선출직 공무원들은 선거에 영향을 끼칠까 봐, 비선출직 공무원들은 민원에 부담을 느껴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산업폐기물 처리장 문제는 방치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부산만은 아닌 전국의 문제…10년 내 '쓰레기 대란' 온다
쓰레기 처리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은 전국적인 문제의 축소판일 뿐이다.

문제를 방치할 경우 앞으로 10년 내 전국 곳곳에서 '쓰레기 대란'이 벌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의 쓰레기 배출량은 가파른 증가세에 있다.

2014년 기준 4만9천915t이던 전국 일일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5년 만인 2019년 5만7천961t까지 늘었다.

공장이나 건설 현장 등에서 나오는 폐기물 등까지 합치면 일일 폐기물 총배출량은 같은 기간 40만2천t에서 49만7천t으로 23% 급증했다.

더구나 지난해와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음식 배달, 택배 수요 등이 급증하며 생활 쓰레기가 많이 늘어났다.

문제는 쓰레기 배출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묻을 매립지 확충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쓰레기는 급증하는데 이를 묻을 땅이 없다면 결과는 뻔하다.

매립지는 포화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는 배출되는 쓰레기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쓰레기 대란'을 불러오게 된다.

[쓰레기 대란]① "쓰레기 버릴 곳 없어"…10년 내 '쓰레기 대란' 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인 2031년 우리나라의 공공 매립시설 215곳 중 47%에 달하는 102곳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강원도의 경우 폐기물 매립지 24곳 중 75%에 달하는 18곳이 2031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른다.

이 가운데 4곳의 증설이 이뤄지고 있지만, 잔여 매립 용량이 가장 큰 원주시 매립지를 비롯한 14곳은 모두 쓰레기로 가득 차게 된다.

충남도 2031년까지 매립지 15곳 중 7곳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광역시 단위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부산과 울산 모두 각각 1곳씩 매립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양쪽 모두 10년 뒤면 포화 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광주시는 3단계로 조성되는 남구 매립장에서 생활폐기물을 모두 처리하고 있다.

아직 2-2 단계 공구(孔口) 조성이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2-1단계 공구가 쓰레기로 거의 다 찼다.

내년 6월이면 다 찬다고 한다.

2-2단계 공구 조성이 끝나는 내년 9월 이전에 쓰레기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에서는 지자체 간 '쓰레기 전쟁'이 벌어졌다.

인천시가 오는 2025년부터 서울과 경기도의 폐기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두 지자체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는 우리나라 전체 폐기물 배출량의 30% 가까이 차지한다.

나라 전체 쓰레기의 30%가 갈 곳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폐기물 발생량은 계속해서 느는데 처리 용량이 제자리걸음이면 이는 결국 국민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쓰레기 대란]① "쓰레기 버릴 곳 없어"…10년 내 '쓰레기 대란' 온다
◇ 매립량 줄이려면 태워야 하는데…주민 반대로 이마저도 '지지부진'
쓰레기는 재활용하지 않으면 땅에 묻거나, 태워야 한다.

매립장 확충이 여의치 않으면 소각장이라도 더 지어야 한다.

사실 소각 방식은 매립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만약 가연성 폐기물을 모두 태운 뒤 거기서 나온 소각재만 매립한다면 쓰레기를 그대로 묻는 직매립 방식보다 부피를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국내에서 배출되는 모든 가연성 폐기물을 소각해 매립하면 전국 매립지의 사용 연한을 확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각장 확충도 매립지처럼 진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소각장 설치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경기 고양, 파주시는 늘어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파주에 광역 소각장을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2027년까지 일일 처리능력 700t급의 광역 소각장이 설치돼 두 지자체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모두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아직 '백일몽'에 불과하다.

파주시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주시 관계자는 "인구 증가에 따라 생활폐기물 발생량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소각시설 증설은 필요하다"면서도 "주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추진 자체가 어려워져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데, 주민 반발에 따라 사업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쓰레기 대란]① "쓰레기 버릴 곳 없어"…10년 내 '쓰레기 대란' 온다
전국으로 시야를 확대하면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

2015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생활폐기물 공공 소각시설은 24곳 늘었다.

상당히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18곳이 일일 처리능력 50t 미만의 소규모 소각장이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수도권이나 부산 등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소각장이 단 한 곳도 늘지 않았다.

그 결과 2019년 기준으로 각각 7천t, 1천800t 분량의 가연성 생활폐기물과 산업폐기물이 매일 직매립된다.

연간으로는 320만t에 달한다.

태워서 없앨 수 있는 폐기물이 소각장 부족 탓에 날마다 산더미처럼 쌓인다는 얘기다.

이승희 경기대 융합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폐기물 처리 문제까지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는 탓에 폐기물 처리의 기초시설인 매립장과 소각장 모두 늘리지 못하고 있다"며 "각 지자체보다 상위인 중앙정부 차원의 개입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