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만난 이해성 KT 디지털&바이오헬스TF 상무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통신사의 강점을 바이오 분야에 접목하면 잠재력이 무한해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생명과학 박사인 이 상무는 SK텔레콤, 존슨앤존슨, 쿼드자산운용 등에서 바이오 신사업과 투자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분야간 협업으로 혁신이 일어나는 사례를 여럿 봤다는 설명이다.
이 상무는 올초 KT에 영입돼 구현모 KT 대표 직속 조직인 미래가치추진실에서 디지털&바이오헬스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KT가 작년 말 미래가치추진실에 태스크포스(TF)로 신설한 분야다.
이 상무는 “지금이 KT가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로 발을 넓힐 적기”라며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디지털 헬스케어 수요가 급증했고, 이에 따라 규제 샌드박스가 커지는 등 정책 분위기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KT는 데이터 강자…바이오 산업 활용 여지 커"
이 상무는 “KT의 개인 데이터 관리 노하우는 바이오 분야에서 엄청난 강점”이라고 했다. 최근 바이오·헬스케어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대세다. 이를 위해 사람 한 명의 유전체 분석 과정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만 해도 약 100GB에 달한다. 개별 병원이나 제약회사가 관리하기는 쉽지 않은 규모다. 이 상무는 “통신사는 개인정보 처리 적절성을 지키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관리하고, 필요한 경우엔 AI를 활용해 빅데이터 분석까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데이터 분석은 예방과 진단·치료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게 이 상무의 전망이다. 웨어러블 기기 등을 통해 건강 데이터를 모으면 누가 어떤 질병을 앓을 위험이 있는지 예측하고 이를 막거나 늦출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유전자 검사와 장내미생물 검사를 통해 특정 개인에게 어떤 식생활이 가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식이다.
이 상무는 “유전자 검사로는 개인의 선천적인 특징을, 장내 미생물 검사로는 식습관 등에 따른 후천적 영향을 알 수 있다”며 “두 검사 데이터를 결합해보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맞춤형 식단관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와 데이터를 활용해 질환·질병 진단을 돕고 어떤 치료를 받으면 좋을지 적절한 선택지를 제시할 수도 있다. 지난달부터 KT가 연구 중인 연하장애(삼킴장애)가 대표 사례다. 삼킴 기능의 이상을 보이는 연하장애는 65세 이상 인구의 유병률이 33.7%에 이르는 대표적인 고령자 질환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령자가 병원을 방문해 조영제를 마시고 엑스레이를 찍어야만 진단할 수 있다.
KT는 목소리를 AI로 분석해 연하장애 정도를 선별·진단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모바일 앱으로도 손쉽게 장애를 따져볼 수 있게 하는게 목표다. 이 상무는 “AI와 데이터 분석이 명확하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산업 '파도' 넘어본 노하우 많아"
통신업과 바이오산업은 각종 규제가 많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 상무가 “KT가 규제 ‘파도’를 넘으며 사업을 키워본 경험을 살릴 수 있다”고 하는 이유다. 그는 “미국 버라이즌, 일본 NTT도코모, 소프트뱅크 등도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을 벌이며 성과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KT는 지난달엔 미국 전자약 개발기업 ‘뉴로시그마’와 손잡고 국내외 전자약 사업에 진출했다. 전자약은 전류나 자기장 자극을 통해 치료 효과를 내는 의료기기다. 뉴로시그마의 전자약은 2019년 미 식품의약국(FDA)로부터 ADHD 치료용 의료기기 승인을 획득했다. 전자약 제품을 국내 인허가 사정에 맞게 개선하는 등 현지화 작업에서 KT가 기여할 수 있는 점이 많다는 게 이 상무의 설명이다.
이 상무는 “KT는 인공위성, 금융, 커머스 등 각 분야에 계열사와 자회사를 두고 있다”며 “앞으로 이를 기반으로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먼 바닷길을 오가는 선박 안에서 건강 이상자가 생길 경우 인공위성을 통해 정보를 주고 받고, KT의 헬스케어 플랫폼을 통해 간단한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KT가 최근 키우고 있는 로봇 사업도 바이오 분야에 접목할 수 있을 전망이다.
KT는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서 만성질환과 암 등 두 가지 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다. 시장이 크고 수요가 많아서다. 이를 위해 바이오 스타트업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인수합병(M&A)를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 상무는 “차차 건강서비스 구독 플랫폼, 웨어러블 기기, KT 로봇 등을 활용한 신사업 등을 선보일 것”이라며 “소비자, 일반기업, 의료진 등에게 친숙한 바이오·헬스케어 서비스 솔루션을 제공하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