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WSJ·NYT 등 전세계 언론사 기자들 망라…피살된 멕시코 언론인도
암살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 부인·약혼녀도 감청 대상
각국 정부의 충격적인 해킹 실태…"유명 언론인 180여명도 대상"
워싱턴포스트(WP)와 가디언 등 전세계 16개 언론사가 국제사면위원회, 프랑스 비영리 단체 '포비든 스토리즈'와 함께 18일(현지시간) 공개한 스파이웨어 탐사 보도는 각국 정부가 언론인들 또한 광범위한 해킹 목표물로 삼아 공격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스라엘의 민간 보안기업인 NSO그룹이 개발한 스파이웨어(스파이와 소프트웨어의 합성어) 프로그램 '페가수스'와 관련된 5만개 이상의 전화번호 목록을 입수, 분석한 결과 인권 운동가, 기업인 등 외에 전세계 약 180여명의 언론인의 전화번호가 이 중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정부에 부정적인 기사나 고위층 부패 의혹 등과 관련한 탐사보도를 해온 기자들이며,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NSO의 고객으로 알려진 국가들 중 주로 자국민을 감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동, 아시아 국가, 멕시코 등에 집중돼 있었다.

◇ 전세계 180여명 언론인, 해킹 대상 명단에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첫 여성 편집장으로 발탁된 룰라 칼라프를 포함해 프랑스의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메디아파르의 설립자 등 전세계 언론사 편집장, 탐사보도 기자, 프리랜서 언론인 등 180여명의 전화번호가 해킹 대상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소속은 FT, 메디아파르 외에도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뉴욕타임스(NYT), 알자지라, 프랑스24, 라디오 프리 유럽, 엘파이스, AP통신, 르몽드, 블룸버그, AFP통신, 이코노미스트, 로이터, 미국의 소리(VOA) 등으로 전세계 주요 언론사들이 대거 망라됐다.

이는 이들 언론인이 NSO의 스파이웨어 '페가수스'를 이용하는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들의 소속 국가 혹은 이들의 취재에 관련된 국가는 아랍에미리트(UAE), 아제르바이잔, 바레인, 헝가리, 인도, 카자흐스탄, 멕시코, 모로코, 르완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나타났다.

칼라프 편집장의 경우 아랍에미리트(UAE)의 감시 대상 목록에 올라있었다.

특히 멕시코의 프리랜서 언론인으로서 지난 2017년 3월 총격 피살된 세실리오 피네다 비르토 역시 감시 대상 목록에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자신의 전화번호가 페가수스 프로그램을 통해 수집된 뒤 한 달 만에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의 나집 라작 전 통리가 연루된 부패 의혹인 이른바 '1MBD' 스캔들, UAE 고위 관리와 왕족의 호화 요트 구매 의혹을 취재한 WSJ의 브래들리 호프 기자도 리스트에 포함됐다.

페가수스는 해킹한 휴대전화 안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빼내고, 대화도 감청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언론인이 취재한 기밀 보도 내용의 소식통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추적하며, 대화 또한 엿듣기 위해 언론인을 해킹 대상으로 삼았을 수 있다.

이번 분석에서는 이들의 전화번호가 해킹 시도 명단에만 올라있던 것인지, 아니면 실제 전화기가 해킹까지 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해킹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기기를 입수해 직접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단에 오른 일부 기자들의 동의를 얻어 직접 전화기를 넘겨받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실제 해킹이 확인된 언론인 중에는 인도의 뉴스 웹사이트 '더 와이어'의 설립자, 정부의 부패 의혹을 파헤쳐온 모로코의 프리랜서 기자, 역시 정부 고위층 부패를 고발해 온 아제르바이잔의 유명 탐사보도 기자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FT 대변인은 "언론의 자유는 필수적인 것"이라며 "언론인들에 대한 불법적인 감시, 개입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NSO는 정부 고객사들은 계약상 심각한 범죄, 테러 행위에 한해서만 자사의 스파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게 돼 있다면서 이번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 암살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 부인·약혼녀도 감시 대상
지난 2018년 10월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부인과 약혼녀 등 지인들 역시 페가수스 프로그램을 이용한 감시 목표물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디지털 포렌식 분석 결과 그의 부인이었던 하난 엘라트르의 휴대전화는 카슈끄지가 암살되기 6개월 전부터 감청 목표물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엘라트르의 휴대전화에, 마치 그의 자매인 것처럼 위장한 문자 메시지가 전송됐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에는 스파이웨어로 연결되는 링크가 담겨 있었다.

이 메시지는 2017년 11월에 한 번, 이어 2018년 4월에 한 번 전송됐다.

둘 다 카슈끄지가 살해된 2018년 10월 이전이다.

엘라트르는 WP 인터뷰에서 해킹 시도가 이뤄질 당시 자신과 카슈끄지는 일주일에 수차례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고 직접 만나기도 했었다면서 "이런 일(해킹, 감청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자말이 이미 내게 경고했었다"고 말했다.

카슈끄지의 약혼녀 하티제 젠기스의 휴대전화 역시 카슈끄지 살해 며칠 뒤 스파이웨어에 뚫린 것으로 나타났다.

카슈끄지를 도왔던 또 다른 조력자인 전직 알자지라 기자 와다 칸파르의 휴대전화 역시 해킹당했으며, 카슈끄지 암살 사건 조사에 관련된 두 명의 터키 정부 관계자 역시 해킹 시도 리스트에 포함됐다.

카슈끄지 본인의 휴대전화 역시 해킹을 당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2018년 10월2일, 결혼 서류 문제로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갈 당시 휴대전화를 젠기스에게 맡겼고, 젠기스는 이후 이 전화기를 다시 터키 당국에 넘겼다.

미국 버지니아에 거주하면서 WP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칼럼을 게재해오다가, 2018년 10월2일 터키 주재 자국 영사관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살해당했다.

그의 시신은 행방마저 묘연한 상태로, 이 사건은 전대미문의 미스테리한 암살 사건으로 남아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사우디 왕실을 암살 배후로 보고 있다.

WP는 카슈끄지의 부인과 약혼녀 모두 카슈끄지를 알기 전에는 풍족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던 이들이었으나 카슈끄지 살해 사건 이후 감시라는 두려움 속에서 송두리째 뒤바뀐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워싱턴DC 일대에서 은신하면서 정치적 망명을 추진 중인 엘라트르는 자신 때문에 가족들도 심문을 당했다면서 "제발 평화롭게, 조용히 지내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