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 작동했으나 '불가항력 규모'에 있으나마나
수위상승 속도 상상초월…"손쓸 틈이 없었다"
기후변화 심화 불가피…대비체계 전면 개편 필요성
"유럽 1천년만의 대홍수"…기후변화시대에 20세기 대응체계 참패
독일과 벨기에 등 서유럽이 큰 물난리를 겪으면서 대비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후변화로 '기록적인 폭우'가 반복될 가능성이 커서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BBC방송 등에 따르면 기상당국의 폭우경보는 지난 주말과 이번 주 초 이미 여러 번 나왔다.

독일 기상청은 사흘 전인 13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와 라인란트팔츠주에 걸친 아이펠과 모젤강 지역에 최고 등급 이상기후 경보를 내리는 등 여러 경로로 폭우를 경고했고 지역정부에도 대비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펠릭스 디치 독일 기상청 기상학자는 같은 날 유튜브에서 남서부 지역에 수 시간 동안 1㎡에 70L 이상 비가 쏟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홍수조기경보시스템(EFAS)에서도 지난 주말 경고가 나왔다고 한다.

EFAS를 설계하고 현재는 자문역을 맡은 해나 클로크 영국 리딩대 교수는 "폭우와 홍수가 오니 주의하라는 경보가 나갔다"라고 말했다.

EFAS는 2002년 엘베·다뉴브강 대홍수를 계기로 개발돼 2012년부터 운영됐다.

사전경보가 있었음에도 사망자가 100명이 넘게 나올 정도로 피해가 큰 이유는 무엇보다 폭우의 규모가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14~15일 독일 서부와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가 접한 지역에 쏟아진 비는 100~150㎜로 평소 한 달 치 강수량 수준이다.

'물 폭탄'이 떨어진 것으로 100년만에 한 번 올 정도의 폭우로 평가됐다.

우베 키르셰 독일 기상청 대변인은 더 나아가 '1천년만의 폭우'라고 말했다.

기록적인 폭우에 강과 하천 수위가 너무 빨리 상승해 손 쓸 틈이 없었다는 것이 당국들의 입장이다.

라인란트팔츠주 코르델시 메다르트 로트 시장은 일간 빌트에 "강 수위가 위험홍수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경보를 받은 뒤 긴급대응에 착수했지만, 수위가 너무 빨리 올라서 통상의 방법으론 소용이 없었다"라면서 "소방당국이 대응 조처를 마련한 지 3시간도 안 돼 모든 것이 물에 잠겼다"라고 말했다.

워낙 많은 비가 단시간에 내려 평소엔 범람할 위험이 없던 작은 강이나 소하천에서도 홍수가 일어난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유럽 1천년만의 대홍수"…기후변화시대에 20세기 대응체계 참패
물론 경보가 전달되지 않았거나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클로크 교수는 "경보의 의도가 제대로 달성된 곳도 있지만, 일부 지역에선 주민에게 경보가 전달되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라인란트팔츠주 아르바일러에선 강 수위가 역대 최고치인 3m를 넘기 약 3시간 전에야 강가 주민에게 첫 경보가 내려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라인란트팔츠주 환경당국은 큰 강들은 홍수경보가 이뤄지지만, 지천이나 소하천은 자세한 정보가 없다고 인정했다.

홍수대책을 지역당국에 맡기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독일은 '지역당국이 지역을 가장 잘 안다'라는 이유로 경보에 따라 어떤 조처를 할지 지역당국이 결정하도록 한다.

클로크 교수는 "여러 주의 다수 기관이 관여하는 파편화된 체계 때문에 (지역별로) 가지각색 조처가 이뤄졌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홍수를 일으킨 폭우가 온실가스로 인한 온난화 등 기후변화 결과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폭우는 온난화가 진행되면 더 늘어나고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대기가 따듯해지면 더 많은 수분을 머금고 이는 강력한 폭우로 이어진다.

이에 이상기후가 늘어나는 상황에 맞춰 경보·대응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후계자로 꼽히는 아르민 라셰트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역사적 규모의 재앙적 홍수를 겪고 있다"라면서 "독일을 기후에 안전한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독일은 두 달여 뒤 총선을 앞둬 '이상기후 대비'가 주요 정치 의제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 영향을 연구하는 헤일리 파울러 뉴캐슬대 교수는 극단적 이상기후에 대비해 기반시설들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치수능력을 뛰어넘는 대형 홍수가 올 것이기 때문에 경보·비상관리체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풍수해 위험성 '긴급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프리데리케 오토 옥스퍼드대 환경변화연구원장은 "풍수해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사람들이 제대로 모른다"라면서 "집이나 도로를 건설하면서 많은 땅을 (아스팔트 등으로) 포장하는데 이는 물이 범람했을 때 큰 피해를 부른다"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