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경제위기 원인은 공장식 교육…창조적 인재로 뿌리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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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과 창조
김세직 지음
브라이트
388쪽│1만8000원
김세직 지음
브라이트
388쪽│1만8000원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은 엄혹하지만 위기의식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펜을 들었습니다.”
진실을 외치는 이는 외로운 법이다. 광야로 나선 모세처럼. 한국 사회의 카산드라가 외친 경고는 ‘한국 경제의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추락했다’는 반갑지 않은 현실이다. 한 세대 동안 모두가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선뜻 나서서 밝히길 주저했던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는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사진)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국제통화기금(IMF) 선임 이코노미스트 등을 지낸 김 교수는 경제 성장론 분야의 대표적 연구자다. 신간 《모방과 창조》(브라이트)를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꺼져가는 원인과 탈출법을 제시한 김 교수를 지난 13일 만났다.
김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여섯 번 정권이 교체되는 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미끄럼틀 타듯이 지속해서 추락한 만큼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단언했다. 진보 정권이 집권하든 보수 정권이 권력을 쥐든 마찬가지였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초대형 외생변수 여부도 관계없었다. 마치 자에 대고 선을 그은 것처럼 성장률 그래프가 우하향했다는 경험칙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모래로 쌓은 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문제는 제로(0) 성장을 넘어 마이너스 성장의 가능성이 코앞에 닥쳤지만, 역대 정부들은 위기를 못 보는 것인지, 못 본 체하는 것인지 경기 부양정책이란 미봉책으로 단기적 성장률을 높이는 데만 집중했다는 점이다. 벼랑 끝까지 몰렸지만 위기의 원인을 찾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폭탄 돌리기’만 반복하며 위험을 키웠다.
김 교수가 지목한 위기의 근원은 역설적으로 1950년대 이후 한국의 고도성장 원인과 뿌리가 같다. 시카고 학파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인적 자본’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30년 넘게 장기성장률이 8% 넘게 지속됐던 한국 경제의 도약기가 가능했던 것은 한국에서 우수한 ‘인적 자본’이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초 이후 갑자기 경제가 추락 국면에 빠져든 원인도 인적 자본에서 찾는다. “대량생산 시대에 맞춰 자원절약형 교육제도로 양산된 모방형 인적 자본이 높아진 경제 수준에 적합한 창조적 인적 자본으로 전환되지 못하면서 시대변화에 뒤처졌다”는 진단이다.
선명한 진단만큼 제시하는 해법도 명확하다. 전 국민의 창조성을 북돋우고, 모방형 인적 자본에서 창조적 인적 자본으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개혁과 교육 혁신이 시급하다는 것. 김 교수는 “새 아이디어를 내놓는 근로자의 세금을 낮춰주거나 정부가 국민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아이디어 등록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 과정과 내용도 창조적 인재 양성을 위한 대대적인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디어의 민주화’가 경제 재도약의 탄탄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창조형 인적 자본을 성공적으로 구축하면 한국 경제가 과거처럼 장기간 고속성장을 재현하는 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난 30년간의 문제에 대한 적확한 지적처럼, 그가 내놓은 예언은 과연 적중할 수 있을까.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진실을 외치는 이는 외로운 법이다. 광야로 나선 모세처럼. 한국 사회의 카산드라가 외친 경고는 ‘한국 경제의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추락했다’는 반갑지 않은 현실이다. 한 세대 동안 모두가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선뜻 나서서 밝히길 주저했던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는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사진)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국제통화기금(IMF) 선임 이코노미스트 등을 지낸 김 교수는 경제 성장론 분야의 대표적 연구자다. 신간 《모방과 창조》(브라이트)를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꺼져가는 원인과 탈출법을 제시한 김 교수를 지난 13일 만났다.
김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여섯 번 정권이 교체되는 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미끄럼틀 타듯이 지속해서 추락한 만큼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단언했다. 진보 정권이 집권하든 보수 정권이 권력을 쥐든 마찬가지였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초대형 외생변수 여부도 관계없었다. 마치 자에 대고 선을 그은 것처럼 성장률 그래프가 우하향했다는 경험칙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모래로 쌓은 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문제는 제로(0) 성장을 넘어 마이너스 성장의 가능성이 코앞에 닥쳤지만, 역대 정부들은 위기를 못 보는 것인지, 못 본 체하는 것인지 경기 부양정책이란 미봉책으로 단기적 성장률을 높이는 데만 집중했다는 점이다. 벼랑 끝까지 몰렸지만 위기의 원인을 찾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폭탄 돌리기’만 반복하며 위험을 키웠다.
김 교수가 지목한 위기의 근원은 역설적으로 1950년대 이후 한국의 고도성장 원인과 뿌리가 같다. 시카고 학파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인적 자본’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30년 넘게 장기성장률이 8% 넘게 지속됐던 한국 경제의 도약기가 가능했던 것은 한국에서 우수한 ‘인적 자본’이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초 이후 갑자기 경제가 추락 국면에 빠져든 원인도 인적 자본에서 찾는다. “대량생산 시대에 맞춰 자원절약형 교육제도로 양산된 모방형 인적 자본이 높아진 경제 수준에 적합한 창조적 인적 자본으로 전환되지 못하면서 시대변화에 뒤처졌다”는 진단이다.
선명한 진단만큼 제시하는 해법도 명확하다. 전 국민의 창조성을 북돋우고, 모방형 인적 자본에서 창조적 인적 자본으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개혁과 교육 혁신이 시급하다는 것. 김 교수는 “새 아이디어를 내놓는 근로자의 세금을 낮춰주거나 정부가 국민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아이디어 등록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 과정과 내용도 창조적 인재 양성을 위한 대대적인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디어의 민주화’가 경제 재도약의 탄탄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창조형 인적 자본을 성공적으로 구축하면 한국 경제가 과거처럼 장기간 고속성장을 재현하는 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난 30년간의 문제에 대한 적확한 지적처럼, 그가 내놓은 예언은 과연 적중할 수 있을까.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