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때 별을 올려다보며 꿈을 꾸던 아이였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우주선에서 아름다운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주 비행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세요.”

11일(현지시간) 자신이 창업한 민간 우주기업 버진갤럭틱의 우주선 ‘VSS 유니티’를 타고 우주에 간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71)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이같이 말했다.

세계 첫 민간 우주인에 올라

영국인인 브랜슨 회장은 이날 세계에서 처음으로 민간인 우주관광 시범 비행에 성공한 억만장자로 이름을 올렸다. CNN은 “상업 우주산업에 기념비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우주 비행은 그가 버진갤럭틱을 세우고 17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브랜슨 회장이 탄 우주선은 오전 8시40분 미국 뉴멕시코주 스페이스포트 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이륙했다. 상공 약 13㎞에 도달한 우주선은 모선 ‘이브’로부터 분리됐다. 우주선은 자체 엔진이 내는 굉음과 함께 고도 88.5㎞까지 치솟았다. 브랜슨 회장을 포함한 탑승자 6명은 약 4분간 중력이 거의 없는 ‘미세 중력’ 상태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우주 속 지구를 한눈에 담았다. 탑승객 전원은 이륙 1시간 후인 오전 9시40분 무사 귀환했다. 브랜슨 회장은 “모든 것이 마법 같았다”며 자축했다.
괴짜 英 억만장자 '3억짜리 우주관광' 시대 열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자선가이자 말썽꾼(troublemaker).’ 브랜슨 회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소개글이다. 그의 고백대로 브랜슨 회장의 일대기는 ‘모험’ 그 자체였다. 난독증을 앓던 그는 16세 때 학교에서 자퇴했다. 기성 잡지와 차별화된 청소년 문화 잡지 ‘스튜던트’를 발행하기 위해서였다.

1972년엔 음반사 버진레코드를 세웠다. 이후 버진애틀랜틱에어라인(1984년·항공업), 버진모바일(2001년·통신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항공업을 대표 사업으로 둔 버진그룹은 현재 40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는 37세 때인 1987년 열기구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다 해양경비대에 구조되는 등 76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괴짜’ 같은 모습은 경영 방식에서도 묻어난다. 버진모바일을 홍보하기 위해 미국 뉴욕 광장에서 홀딱 벗고 퍼포먼스를 펼친 게 대표적이다.

베이조스 “축하”…우주패권 전쟁 격화

우주관광 패권을 둘러싼 억만장자 간 각축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을 세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이사회 의장과 브랜슨 회장의 라이벌 관계가 주목된다. 두 회사 모두 우주 가장자리를 탐험하는 관광상품을 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다.

브랜슨 회장의 이날 비행도 베이조스가 오는 20일 우주로 떠난다는 소식에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진 것이다. 베이조스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우주 비행을 축하한다”며 “우주 비행 클럽에 가입하는 게 기다려진다”고 적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도 9월 궤도 비행을 앞두고 있다.

주식 매각 소식에 주가는 급락

버진갤럭틱은 내년 초 상업용 우주 비행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버진갤럭틱은 20만달러(약 2억2970만원)에 티켓을 사전 판매하다가 25만달러로 가격을 높였다. 버진갤럭틱에 따르면 현재까지 60여 개국 출신 600명 이상이 우주여행을 신청했다. 눈길을 끄는 티켓 구매자는 머스크다.

우주비행 성공 소식이 전해진 뒤 버진갤럭틱은 최대 5억달러(약 5740억원)에 이르는 보통주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주가는 10%가량 폭락했다. 이날 기준 버진갤럭틱의 시가총액은 105억7900만달러다. 지난해에도 이 회사는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자사주 5억달러어치를 매각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