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제 역할 위해 충분한 예산·권한 줘야…시대역행은 대통령 자질 없어"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와 대권주자인 하태경 의원·유승민 전 의원 등이 내놓은 '여가부 폐지론'에 대해 여성단체들이 잇따라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여가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여가부 폐지 공약으로 젠더갈등 조장하는 혐오 정치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신지예 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강도, 살인, 방화 범죄 발생률은 감소한 반면 성범죄만 증가했다는 대법원 통계와 13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하루에 5건꼴로 발생한다는 통계를 언급하며 "여성들에게 이런 상황은 재난과도 같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 지원과 성평등 교육이 절실한 이때 여가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재난 시기에 컨트롤 타워 자체를 없애자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폐지되어야 할 것은 이 시국에 여가부 폐지 운운하는 하태경, 이준석, 유승민 씨의 정치인생"이라면서 "여성들의 고통이 데이터로 보이고 증언으로 들리는 데 정치인들이 나서서 자국민을 공격하고 있으니 그 정치집단이야말로 폐지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리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여가부가 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소관 업무를 파편화해서 여성들의 삶을 위태롭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여가부에 충분한 예산과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효진 여.세.연 활동가는 유승민 의원이 여가부 폐지 대안으로 주장하는 '양성평등위원회' 설치에 대해 "'위원회'가 권고한 일을 전적으로 담당해 처리할 수 있는 부처가 없다면 이 '위원회'는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라며 "유승민이 내세우는 '양성평등'은 허울뿐인 수사이며 여가부 폐지 주장은 사실상 성평등 정책의 폐지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성차별주의 전략으로 약자가 불안을 대리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다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여성뿐만 아니라,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아동, 장애인, 이주민이 모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시대에 역행하는 사람이 과연 대통령 후보의 자질이, 당 대표의 자질이, 국회의원의 자질이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유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정치인들이 표몰이를 하는 데에 여성이, 여성혐오가 또다시 이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가부는 빈약한 부서를 갖고 캠페인 정도 하는 역할로 전락했다'는 발언으로 여가부 업무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으며, 하태경 의원은 '여가부는 젠더갈등을 부추겨왔다'라는 말로 정말로 본인이 젠더 갈등을 부추겼다"고 성토했다.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서는 "여가부를 폐지한 후 여가부의 예산으로 '의무 복무를 마친 청년들을 지원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정치권 백래시(backlash·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의 정점을 찍었다"고 비판했다.
신 활동가는 이 대표 등을 향해 "당신들이 권력자가 되어보겠다고 반여성주의 정서를 이용하는 동안 2019년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전년 대비 25.5% 늘었고, 지난해 1∼8월 자살을 시도한 사람 중 20대 여성이 32.1%로 전 세대와 성별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식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아직도 한국 사회에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개탄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 고민할 것"이라며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의 공약에서 쉽게 여성을 배제해버린 당신들은 대통령으로서는 물론 정치인으로서도 자격이 없다"고 날을 세웠다.
전날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성명을 내고 "젠더 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젠더 갈등에 편승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고자 꼼수를 부린다"며 "설사 여가부가 부족했다고 해도 부처 자체를 없애겠다는 것은 편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전국 60개 여성단체의 모임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지난 7일 "한심한 시국관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면서 국민의힘 등에 사과를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