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수는 다단계·보이스피싱 등에 한정…"민사로 해결해야"
경찰, 가짜 수산업자 범죄수익 몰수 검토…"요건 안돼"
수산업자를 사칭한 116억대 사기범 김모(43·구속)씨가 범죄수익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몰수보전하는 방안을 경찰이 검토했지만, 법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김씨는 사기 수익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슈퍼카 구입·리스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자신의 재력을 과시해 사기 피해자들을 현혹하려던 의도로 해석된다.

그는 또 개인 메신저 등에 수억원을 호가하는 외국 유명 브랜드 고급 차량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여럿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김씨는 재력가 행세를 하며 수산업체를 운영하는 척했으나 실제로는 변변한 직업 생활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이들 슈퍼카의 구입·리스에 쓴 돈은 투자금 명목으로 가로챈 사기 범죄수익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김씨가 과거에도 사기행위를 한 전력이 있고, 여러 사람을 속여 거액을 가로챈 정황 등을 볼 때 범죄수익을 빼돌릴 우려도 있다고 보고 기소 전 몰수보전을 검토했다.

기소 전 몰수보전은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기 전에 범죄 수익금 등 재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일시적으로 금지해놓는 조치다.

하지만 경찰은 현행법상 수사 단계에서 김씨의 차량 등 범죄수익을 몰수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법령을 검토해보니 일반 사기는 기소 전 몰수보전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다"며 "슈퍼카 등이 범죄수익에서 유래한 재산은 맞지만, 요건이 안 돼 몰수를 못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근거 법률은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법)이다.

이 법에서 몰수 대상으로 규정한 사기 범죄는 범죄단체를 조직한 범행, 다단계 등 유사수신, 보이스피싱 등에 한정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국가가 범죄자의 돈을 빼앗아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제도가 없어 일반 사기 사건에서 몰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횡령·배임 등 부패범죄나 서민 다중피해가 발생한 범죄에만 예외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슈퍼카를 예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이 번듯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처럼 가장했다면 압수 대상인 사기범죄 증거가 될 수 있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고급 외제차를 자랑했더라도 김씨가 이를 사기범죄의 도구로 활용했음을 법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수사기관이 차량을 압수한다면 김씨가 이를 처분할 수 없어 피해자 구제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김씨 주변인들에 따르면 김씨는 피해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고자 자신 소유로 된 차량 일부를 중고차 매물로 내놓아 현금화를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현직 법조인은 "몰수를 제한적으로만 하도록 한 것이 '입법 미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몰수를 사기 일반으로 확장하면 국가 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그만큼 커진다"며 "피해회복은 민사소송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했다.

경찰은 김씨가 금품을 제공한 유력 인사가 최소 28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이미 입건한 전 부장검사와 총경급 경찰, 전·현직 언론인 외에 추가 위법 사례가 있는지 조사 중이다.

김씨 주변에서는 그가 사기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재력 과시와 인맥 관리에 썼을 뿐 이를 매개로 모종의 청탁까지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김씨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정치권 인사들에게 접근해 선물을 보낸 데는 인맥 확대를 통해 정계에 진출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평소 정치에 입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주변에 여러 차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