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자리' 출간…김우재 교수 "삶으로서의 과학 필요해"

17세기 뉴턴 역학이 등장하면서 서구는 동양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서구에서는 프랑스, 영국, 독일을 중심으로 지성계의 슈퍼스타들이 잇따라 등장해 사상계를 이끌었다.

볼테르는 뉴턴을 프랑스에 소개하며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에 불을 지폈고, 디드로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책에 담고자 '백과전서' 편찬에 돌입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집필하며 프랑스 혁명을 준비했다.

칸트는 뉴턴의 과학적 방법론과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철학적 토양으로 삼았다.

이들 철학자의 사상적 토대는 과학에 있었다.

볼테르는 뉴턴이 저서 '프린키피아'(1687)에서 내세운 과학적 방법론을 인간과 사회를 해석하는데 적용했고, 디드로는 완벽한 지식체계인 수학을 비롯해 유물론과 실험과학에 천착했다.

디드로와 함께 '백과전서'를 쓴 달랑베르는 수학자이기도 했다.

유전학자인 김우재 하얼빈공업대학교 교수가 쓴 '과학의 자리'(김영사)는 과학의 관점에서 서구 철학의 역사를 짚어본 교양서다.

책은 뉴턴 역학이 촉발한 과학혁명이 어떻게 서구 사회로 뻗어나갔는지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뉴턴의 위대한 점은 데카르트에게서 내려온 불완전한 자연철학의 연역적 방법과 베이컨으로부터 전수된, 실험을 통한 귀납적 방법을 하나로 종합했다는 것이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런 뉴턴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좌장 격인 볼테르는 "수학이라는 나침반과 경험이라는 횃불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한 발짝도 내디딜 수가 없다"며 계몽주의에 뉴턴의 방법론을 입혔다.

그는 철저한 '뉴턴주의자'로 과학적 방법론을 독단과 부정이 만연한 당시 프랑스 사회에 적용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자연과학으로 들여다본 서구 철학사
디드로도 뉴턴 과학과 철학, 사회학과, 문학을 지속해서 넘나들었다.

그는 "해부학자, 자연학자, 생리학자이자 의사가 되지 않고서는 훌륭한 형이상학자가 되기 몹시 어렵다"며 폭넓은 지식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칸트는 과학의 성취를 철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철학적으로 변환하고자 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과학적 방법론을 경제학과 사회과학에 도입하고자 했다.

19·20세기에도 과학적 사고방식을 인접 분야 학문에 접목하려는 이 같은 시도는 계속됐다.

동물학자 토마스 헉슬리, 철학자 화이트헤드, 경제학자 케인스 등이 나서서 과학적 방법론을 생물학, 철학, 경제학 등 인접 학문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과학자는 철학자가 됐고, 이들은 사회에 적극적으로 발언권을 행사했다.

이 같은 과학과 여러 학문의 접목에 힘입어 서구 사회는 세계대전, 대공황 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처럼 활발하게 의견을 편 서구 과학자들과 달리, 한국 과학자들은 사회에서 주변적 역할만 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국내에서 과학은 문화가 아니라 지식으로 통용되고, 과학자는 지식인이 아니라 기술인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압축 성장을 연쇄적으로 한 한국 사회가 그동안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추구하는 과학 자체보다는 유용성을 중시한 기술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한국의 과학이 사회에서 겉도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가 과학을 도구로만 받아들이고, 사유의 방식이나 문화로는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저자는 "우리는 과학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외면하고, 노벨상과 첨단과학에만 매달려왔는지도 모른다"며 "이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보다 평균적인 시민 모두가 마스크와 백신의 중요성을 삶 속에 체화하는, '삶으로서의 과학'이 필요한 시기"라고 주장한다.

608쪽. 2만4천700원.
자연과학으로 들여다본 서구 철학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