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은 경험'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로 불리는 김기영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인 윤여정이 '화녀'(1971), '충녀'(1972)에 이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1990년 작품이다.
영화는 남편이 운전한 자동차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여정(윤여정)과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자식들까지 낳은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명자(이탐미)가 서로의 복수 상대를 죽이기로 공모하게 된 이야기를 다룬다.
여정은 남편의 생명보험을 들기 위해 만난 보험사 직원의 아내인 명자가 억울한 상황에 처한 것을 알게 되고, 명자 대신 핏빛 복수에 나선다.
이후 여정은 자신의 남편을 대신 죽여줘야 한다며 명자를 압박한다.
배신감과 증오심에 휩싸인 두 여성이 핏빛 복수를 위해 손을 잡는 서사는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적이었던 동시에 한 남성을 두고 여성들이 대립하는 '화녀', '충녀' 등 김기영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도 차이가 있다.
여정은 모든 비밀과 진실을 알고 있고, 이에 대해 단호하게 심판을 내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여정의 손에 이끌려 복수극에 동참하게 된 명자는 선과 악을 오가며 혼란스러운 심리를 드러낸다.
두 사람은 내면의 아픔을 공유하며 복수에 힘을 싣는다.
영화의 백미는 윤여정의 연기다.
윤여정은 특유의 톡 쏘는 듯한 화법과 침착한 분위기로 우아하게 서늘한 독기를 품어낸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여유 있게 뱉어내는 대사에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담아내는 윤여정의 연기는 30년 전 작품인데도 세련된 느낌이 든다.
상대역인 이탐미 역시 안정적인 연기로 극의 균형을 잡는다.
사실 '죽어도 좋은 경험'은 완성된 뒤에도 김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고, 사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윤여정이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배우상을 거머쥐며 주목을 받은 계기로 4K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친 버전으로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게 됐다.
제작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개봉되는 영화에는 1990년대 서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 등 소소한 재미가 있다.
조형물이 올라가지 않은 올림픽대로부터 허허벌판에 세워진 아파트, 지금은 보기 힘든 구형 모델의 자동차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자식을 낳지 못해 이혼당하는 여성과 같은 당시의 사회상도 담겨있다.
배우들의 목소리가 더빙으로 입혀진 유성영화로 지금과는 다른 억양의 '서울 사투리'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성관계 장면에는 카메라가 말 무리의 그림을 비추며 말의 울음소리로 사운드를 채우는 당시 연출도 30년 만에 개봉하는 작품에서 관람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는 15일 개봉. 상영시간 98분. 청소년관람불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