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의 신세계, 샤퀴테리
샤퀴테리(charcuterie)는 프랑스어로 ‘살코기(cair)’와 ‘가공된(cuit)’이 합쳐져 파생된 말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육가공품, 흔히 말하는 햄이다. 다만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 아니라 유럽 전통 방식을 따라 만든 수제 햄을 보통 샤퀴테리라고 부른다. 한국에선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낯설었던 요리지만 최근에는 ‘홈술’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와인 안주로 샤퀴테리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리 방식과 재료에 따라 무한한 변주가 가능한 샤퀴테리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긴 역사만큼이나 종류도 다양

샤퀴테리의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장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로마인들이 고기와 각종 부속물의 저장 기간을 늘리기 위해 훈연 또는 염장 등의 방식으로 만든 가공육이 샤퀴테리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샤퀴테리 식문화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건 15세기 프랑스. 당시 프랑스에서는 요리되지 않은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게 금지돼 있었다. 상인들은 돼지고기를 여러 방식으로 가공해 판매했다. 이 같은 돼지고기 가공육이 샤퀴테리로 불렸고, 각종 돼지고기 가공법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샤퀴테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같은 돼지고기를 사용한 육가공품이지만 조리 방법에 따라 맛과 향은 천차만별이다.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샤퀴테리는 살라미다. 살라미는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마늘과 후추 등의 양념을 강하게 한 뒤 오랜 시간 저온 건조한 이탈리아의 전통 소시지다. 기름지면서도 강한 향이 특징이다.

하몽은 돼지 후족의 넓적다리 부분을 통째로 잘라 소금에 절인 뒤 곰팡이가 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건조 숙성한 스페인 전통 햄이다. 열을 가하지 않고 서늘한 장소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 오랜 시간 말려야 한다. 숙성 과정에서 지방이 근육 사이사이로 골고루 퍼지면서 맛과 향이 완성된다. 프로슈토도 만드는 방법은 하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프로슈토의 고향은 이탈리아다. 하몽은 스페인의 돼지 품종으로 유명한 이베리코를 사용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하몽과 프로슈토 모두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먹는다.

이 외에도 프랑스의 파테와 잠봉, 스페인의 초리조 등 유럽 각국마다 특색 있는 조리법으로 만든 샤퀴테리의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다.
햄의 신세계, 샤퀴테리

와인과 찰떡궁합

샤퀴테리는 와인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가벼운 무게감의 레드와인이나 화이트와인, 스파클링와인과 궁합이 좋다. 코로나19로 집에서 간단하게 와인을 즐기는 ‘홈술족’이라면 치즈처럼 가볍게 와인에 곁들여 즐기기에 그만이다. 샐러드와 함께 먹거나, 샌드위치에 넣어도 좋다. 짭짤하면서도 깊은 향을 풍기는 샤퀴테리가 요리의 품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국내에는 2014년께부터 샤퀴테리 전문점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더 샤퀴테리아’는 훈연 대신 건조 발효한 샤퀴테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다. 매장을 방문하면 진열장 안에 매달려 있는 각종 샤퀴테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테이블당 한 병까지 ‘콜키지 프리(와인 개봉 및 와인잔 제공 서비스 무료)’라는 것도 큰 장점이다. 좋아하는 와인을 한 병씩 들고 모여 샤퀴테리와 함께 즐기면 가격적인 부담도 크지 않다. 최근에는 여의도 더현대서울에도 지점을 냈다.

서울 망원동과 계동에 있는 ‘소금집 델리’는 국내 샤퀴테리의 대중화를 이끈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흔히 말하는 ‘인스타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바게트에 잠봉과 버터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인 잠봉뵈르가 대표 메뉴다. 작은 매장이 매일 밤 와인과 함께 샤퀴테리를 즐기고 싶어하는 이들로 가득 찬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메종조’는 프랑스 국가 공인 샤퀴티에 자격증을 딴 셰프가 운영하는 프랑스식 전통 샤퀴테리 전문점이다. 매장 인테리어부터 작은 그릇까지 프랑스 현지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다. 샤퀴테리만큼 빵 맛도 수준급이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