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만 비현실적으로 커져
예상 용량 태양광 설치도 문제
남아도는 전력 저장에 큰돈
'탄소중립' 새 목표 설정한 만큼
수단도 바꿔 脫원전 포기를
박주헌 <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
당연히 결과는 뒤죽박죽이다. 지금까지 탈원전 논리의 한 축은 낮은 전력 수요 증가 전망에 있었다. 전력 수요가 과거처럼 급증하면 원전 없이 수급 안정을 꾀하기 어렵다는, 원전의 불가피성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핵 인사들은 과거 정부가 원전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 수요를 일부러 부풀려 전망했다고 비난해왔다.
한편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거의 모든 에너지의 전기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력 수요가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번 시나리오의 2050년 전력 수요가 2018년 대비 2.3배 이상 대폭 증가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전력 수요 급증에 따른 원전의 불가피성 논리는 이념화된 탈원전에 막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전력 수요 급증은 태양광 설비 대폭 증설의 이유가 됐으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원전 없이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짜다 보니, 재생에너지 규모가 비현실적으로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실제 2050년 태양광 규모가 무려 464GW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앞으로 30년간 매년 15GW씩 늘려야 가능한 규모다. 현재까지 누적 태양광 규모는 15GW가 채 되지 않고, 미국이 작년에 늘린 태양광 설비가 19GW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태양광 464GW가 실제로 설치돼도 문제다. 시나리오가 예상하는 2050년 전력 수요량 1200TWh를 역산해 2050년 평균 부하를 추산하면 약 137GW 정도로 태양광 설비 용량보다 거의 300GW 낮은 수준이다.
이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한낮을 중심으로 거의 300GW가 넘는 전력이 남아도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는 뜻이다. 과잉 전력은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소, 양수발전 등을 이용해 저장하거나 이웃 국가에 수출해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시나리오에 반영된 중국과 러시아와 연결될 5GW 규모의 슈퍼그리드, 7.7GW 규모의 양수발전, 수소의 수입 의존율 75%를 종합해 볼 때, 과잉 전력의 대부분을 ESS 저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천문학적 비용이다. 300GW의 과잉 발전 상태가 4시간만 지속돼도 약 1200GWh에 해당하는 전기를 저장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ESS 설치비용은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시한 5.4억원/MWh를 기준으로 추산해도 650조원에 달한다. 단 4시간 분량의 과잉 전력을 저장하는 비용이 이렇게 엄청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시나리오의 계획처럼 전력 수요의 6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려면 아마도 야간, 흐린 날, 장마철에 필요한 대부분의 전력을 ESS에 저장된 과잉 전력을 활용해야 할 텐데 이때 필요한 ESS 규모와 비용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번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공상과학영화의 시나리오 같다. 근본 원인은 탈원전 집착에 있다. 탄소중립 없는 탈원전은 어렵긴 하지만 현실의 목표가 될 수 있는데,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현실 세계에선 달성 불가능한 허구적 목표일 뿐이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이제 탄소중립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오로지 과학과 기술적 판단에 근거해 탄소중립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마련해주길 바란다. 탄소중립은 4년 전 탈원전 선언 때까지만 해도 고려되지 않다가, 작년에 비로소 이슈화된 새로운 목표다. 목표가 바뀌면 수단도 바뀔 수 있다. 새로운 목표인 탄소중립을 이유로 탈원전을 포기해도 비난할 국민은 별로 없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