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원 출신 노인의 마지막 임무…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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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장편 펴낸 김경욱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일부"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기억력도 떨어진 칠순 노인 김도식. 늙고 병든 지금은 무시당하나 왕년에 잘 나갔던 전직 안기부 해외 담당 요원이었다.
평소 실명 대신 불리는 코드 네임은 '라이카'이고 별명은 김 감독. 비밀리에 김일성을 직접 만나는 등 굵직한 해외 공작을 맡았던 자부심이 여전히 크다.
어느 날 그는 신문에서 자신의 부고를 발견한다.
민완 첩보원 출신의 직감이 발동한 그는 이 부고가 자신을 길러낸 멘토인 김 실장이 보낸 암호문임을 직감한다.
'목사'로 불리는 김 실장은 소년원에 있던 코드 네임 라이카의 재능을 알아보고 요원으로 발탁해 육성한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인물이다.
김 목사는 다른 여러 소년도 발탁해 훈련한 뒤에 이들로 비선 조직을 꾸리고 각종 중대사에 개입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정권 교체와 함께 감옥에 갇히며 영락했고 휘하에 있던 라이카와 동료들 역시 조직에서 버림받았다.
목사가 출옥하고 자취를 숨긴 뒤에는 아무 소식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무려 20년 만에 침묵을 깨고 옛 수하를 호출한 것이다.
독창적 이야기꾼이자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김경욱이 5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 '나라가 당신 것이니'(문학동네)는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라이카는 과거 동료였던 코드 네임 피셔맨과 재단사를 찾아낸다.
피셔맨(별명 김 배우)은 침술로 자백을 끌어내던 자백 유도 기술자이고 재단사(별명 김 작가)는 공작 대본 전문가다.
왕년의 용사들은 목사의 흔적을 쫓으며 기묘한 일들을 겪은 이후 미국까지 가게 된다.
다시 만난 목사는 아이오와주 옥수수밭에 거처를 세우고 미국 대통령 암살이라는 엄청난 작전을 기획 중이었다.
허황해 보이는 망상 같은 임무지만 목사는 물론 왕년의 요원들도 진심으로 사력을 다한다.
이 때문에 원래도 볼품없이 초라해진 노장들의 모습은 더 시대착오적이고 무모하며 맹목적으로 읽힌다.
마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설의 서사를 이끄는 라이카도 시간이 갈수록 의구심이 커진다.
자신이 해독해낸 단서에 대한 확신이 점점 떨어지고 이 임무와 목사에 대한 의심도 거둘 수 없다.
자신의 정체성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라이카는 목사가 과연 자신을 부른 것인지, 자신이 목사를 찾아온 것인지도 혼동한다.
그는 두 평행우주 속에서 길을 잃은 영혼일 수도 있다.
옛 영화를 잊지 못하고 허황한 일을 꾸미는 이들 무리는 과거 망령에 사로잡혀 현재의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들로 묘사된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과거에 기성세대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했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면서 시대착오적 행태를 되풀이하는 인간의 본질적 모순과 한계를 풍자한 것으로도 읽힌다.
김경욱은 작가의 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일부인지도 모른다"면서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민낯이 드러나는 쪽은 가면 아래 숨은 얼굴만이 아니다.
가면이 벗겨진 자리에는 거울이 남기 마련이기에"라고 말했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경욱은 대표작으로 장편 '개와 늑대의 시간', '야구란 무엇인가', 소설집 '베티를 만나러 가다', '위험한 독서'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을 받았다.
/연합뉴스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기억력도 떨어진 칠순 노인 김도식. 늙고 병든 지금은 무시당하나 왕년에 잘 나갔던 전직 안기부 해외 담당 요원이었다.
평소 실명 대신 불리는 코드 네임은 '라이카'이고 별명은 김 감독. 비밀리에 김일성을 직접 만나는 등 굵직한 해외 공작을 맡았던 자부심이 여전히 크다.
어느 날 그는 신문에서 자신의 부고를 발견한다.
민완 첩보원 출신의 직감이 발동한 그는 이 부고가 자신을 길러낸 멘토인 김 실장이 보낸 암호문임을 직감한다.
'목사'로 불리는 김 실장은 소년원에 있던 코드 네임 라이카의 재능을 알아보고 요원으로 발탁해 육성한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인물이다.
김 목사는 다른 여러 소년도 발탁해 훈련한 뒤에 이들로 비선 조직을 꾸리고 각종 중대사에 개입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정권 교체와 함께 감옥에 갇히며 영락했고 휘하에 있던 라이카와 동료들 역시 조직에서 버림받았다.
목사가 출옥하고 자취를 숨긴 뒤에는 아무 소식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무려 20년 만에 침묵을 깨고 옛 수하를 호출한 것이다.
독창적 이야기꾼이자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김경욱이 5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 '나라가 당신 것이니'(문학동네)는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라이카는 과거 동료였던 코드 네임 피셔맨과 재단사를 찾아낸다.
피셔맨(별명 김 배우)은 침술로 자백을 끌어내던 자백 유도 기술자이고 재단사(별명 김 작가)는 공작 대본 전문가다.
왕년의 용사들은 목사의 흔적을 쫓으며 기묘한 일들을 겪은 이후 미국까지 가게 된다.
다시 만난 목사는 아이오와주 옥수수밭에 거처를 세우고 미국 대통령 암살이라는 엄청난 작전을 기획 중이었다.
허황해 보이는 망상 같은 임무지만 목사는 물론 왕년의 요원들도 진심으로 사력을 다한다.
이 때문에 원래도 볼품없이 초라해진 노장들의 모습은 더 시대착오적이고 무모하며 맹목적으로 읽힌다.
마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설의 서사를 이끄는 라이카도 시간이 갈수록 의구심이 커진다.
자신이 해독해낸 단서에 대한 확신이 점점 떨어지고 이 임무와 목사에 대한 의심도 거둘 수 없다.
자신의 정체성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라이카는 목사가 과연 자신을 부른 것인지, 자신이 목사를 찾아온 것인지도 혼동한다.
그는 두 평행우주 속에서 길을 잃은 영혼일 수도 있다.
옛 영화를 잊지 못하고 허황한 일을 꾸미는 이들 무리는 과거 망령에 사로잡혀 현재의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들로 묘사된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과거에 기성세대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했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면서 시대착오적 행태를 되풀이하는 인간의 본질적 모순과 한계를 풍자한 것으로도 읽힌다.
김경욱은 작가의 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일부인지도 모른다"면서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민낯이 드러나는 쪽은 가면 아래 숨은 얼굴만이 아니다.
가면이 벗겨진 자리에는 거울이 남기 마련이기에"라고 말했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경욱은 대표작으로 장편 '개와 늑대의 시간', '야구란 무엇인가', 소설집 '베티를 만나러 가다', '위험한 독서'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