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다짐한 반성과 혁신이 다 어디갔나 싶다. 경선시기 싸움은 점입가경이다. 당헌엔 대선 180일 전까지 후보를 선출하게 돼 있다. 지지율이 높은 이재명 경기지사는 당헌대로 하자고 하고, 다른 주자들은 늦추자며 맞서고 있다. 그제 의총에서 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대선주자 간 편가르기, 힘자랑만 확인한 꼴이 됐다.
‘윤석열 X파일’은 정치권을 블랙홀로 끌고가고 있다. 여당 대표가 “윤 전 검찰총장에 대한 파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한 데 이어 야권 인사가 파일을 확인했다고 하면서 파장이 증폭됐다. 여당은 야권 대선주자 쪽으로 출처를 돌리면서 강도 높은 검증을 예고하고 있고, 국민의힘과 윤 전 총장은 정치공작, 불법사찰이라고 맞대응에 나섰다. 대선주자에 대한 검증은 엄격하게 거쳐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실체 없이 음모론과 의혹만 난무하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내년 대선에 나가겠다고 선언하거나 주자로 거론되는 사람은 여야 합쳐 10명이 넘는다. 국민은 어떤 리더가 나라를 맡길 만한 자질을 갖췄는지 이 중에서 골라야 한다. 그러나 유력 대선주자들조차 미래비전을 놓고 경쟁하기보다는 헤게모니 다툼에 몰두하고, 정치권이 온통 X파일 공방에 빠져들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집값 폭등으로 서민의 내집마련 꿈은 요원해졌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정치가 이런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고 해법을 찾기는커녕 갈등과 퇴행으로 치달으니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는 지경에 이른 것 아닌가.
여권은 코로나 이후 틈만 나면 대한민국 국격이 높아졌다고 자랑하지만 정치권 행태를 보면 아직 멀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격을 높인 것은 세계를 누비는 기업인들과 K팝·K무비·K드라마를 비롯한 문화 경쟁력이지 한국의 삼류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 나라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