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정책 동향
유럽연합(EU)은 기업의 그린 워싱을 걸러내고 친환경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택소노미를 만들었다.
유럽연합(EU)은 기업의 그린 워싱을 걸러내고 친환경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택소노미를 만들었다.
최근 택소노미(taxonomy)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수년 전부터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이 세계적인 이슈가 되면서 기업이 친환경적인 경제활동을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유럽연합(EU)은 기업의 위장 친환경 행위(greenwashing)를 걸러내고 친환경 활동을 독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소노미를 만들게 됐다.

20개월에 걸친 작업의 결과물

EU의 택소노미 도입은 기후변화에 대한 문명사적인 대응이다. EU는 지속 가능한 금융전문가 그룹(TEG)을 통해 지난해 3월 택소노미 개발을 위한 보고서와 심사 기준을 포함한 부속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2018년 12월 기술심사 기준을 만든 뒤 200명 이상의 전문가와 두 번의 공청회를 통해 수렴된 의견을 담은, 20개월에 걸친 작업의 결과물이었다. 이 분류법은 2020년 6월 22일 EU 관보에 실렸고, 2022년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EU 택소노미에 따르면 기업활동은 기후변화 완화, 기후변화 적응, 수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과 보호, 순환경제로의 전환, 오염방지 및 관리,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의 보호 및 복원 등 6개의 환경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경영활동이 네 단계에 걸쳐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인지를 선별하는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첫 단계에서는 기업이 벌이는 사업이 기술적 기준에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 생산의 경우 '2025년까지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50g CO2/km 이하로 한다'는 기준치가 설정돼 있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사업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2단계에서는 1단계에서 적합하더라도 다른 환경 목표에 중대한 해를 끼치는 활동이라면 그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정하는 DNSH(Do No Significant Harm) 기준이 있다. 3단계는 기업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충족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 기업 행동 지침’이나 유엔의 ‘비즈니스와 인권에 관한 지도원칙’ 등을 준수하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 점에서 EU 택소노미는 환경(E)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S) 분야도 포함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의 지침으로 영역을 넓히게 됐다.

마지막 단계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으로 인정된 사업의 경우, 재무상태표상 기후변화 완화 노력, 녹색 자산 비율(GAR) 등 성과 지표가 ESG 정보 공시에 포함돼야 한다. 금융기관은 기업이 발표한 ESG 관련 공시를 참고해 대출 및 투자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게다가 EU에서는 내년부터 종업원 500명 이상의 대기업에 환경 관련 비재무적 성과(NFRD)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은 유럽 내에서 약 6000개 기업과 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 투자펀드, 연기금 등도 해당된다. 또한 EU에서는 연말까지 녹색 산업으로 규정하는 6개 환경 목표 중에서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에 대한 시장참여자들의 실무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내년 말까지 나머지 환경 목표에 대해 행동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택소노미가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작동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K택소노미, 투명한 정보 공유 필수

국내에서도 K택소노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올해 초안이 발표될 것으로 알려진 K택소노미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을 산업별로 정의하고 판별하는 분류체계로 우리의 상황에 맞게 투자자금이 친환경 산업으로 유입되도록 촉진하는 장치다. EU 택소노미의 도입 과정과 특성을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은 시시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택소노미는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U는 2030년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40% 이상 줄이겠다는 방침이었으나, 2018년 현재 25.2%를 줄이는 데 그쳤다는 반성에서 택소노미를 도입하게 됐다. EU 택소노미가 대세이긴 하지만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환경 목표에 기여한 것과 침해한 것에 대한 기술적인 선별 기준(technical screening criteria)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EU집행위원회는 위임 법률을 채택해 법제화하도록 하고 있다.

둘째,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이 중요하다. EU 택소노미는 대단히 복잡한 구성과 체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위한 긴 합의과정이 필요하다. EU 택소노미의 경우 초안에 없던 원자력에너지에 대해서 EU 산하 공동연구센터(JRC)에 분석을 의뢰했고, JRC는 3월 말 긍정적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으며 조만간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의 결정이 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셋째, 정보 공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U의 탄소배출량은 전 세계 9%에 불과하지만 EU 택소노미는 이미 새로운 표준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은 EU 역내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 기업도 EU 기업과 사업을 하거나 수출을 할 경우 EU 기업에 준하는 정보공개가 요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관점에서 EU 이외의 지역에서도 EU를 따르는 형태로 기준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음을 감안해서 K택소노미는 실효성 있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