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 벼루 1천점 수집 이근배 시인 "동양문화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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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서 등단 60주년 기념 벼루 소장품전
"게으르기로 짝이 없는/ 내가 어쩌다 벼루라는/ 도깨비보다 무서운 귀신에 홀려/ 서울 인사동이나 북경 꾸완청에서/ 먹 때에 절은 옛 벼루를 들고 와서는/ 얼굴이며 몸뚱이를 씻기는 일에는/ 시간을 물 쓰듯 한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인 이근배(81) 시인의 시 '세연-벼루읽기' 중 일부다.
소문난 벼루 수집가인 시인의 벼루 사랑과 벼루 수집에 대한 열정이 나타난다.
할아버지의 남포석 벼루를 보며 자란 기억으로 벼루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수집해온 시인은 벼루를 1천점 이상 소장하고 있다.
벼루에 관해 쓴 연작시만 80여편에 이른다.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6일 개막하는 이근배 시인 등단 60주년 기념 한국 옛 벼루 소장품전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는 시인이 반평생 수집한 벼루를 공개하는 자리다.
시인의 방대한 벼루 컬렉션 중에서 위원화초석 벼루 60여점, 남포석 벼루 40여점 등 엄선한 10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 작품들은 예술적인 조각품으로 벼루를 다시 보게 한다.
위원화초석 벼루는 녹두색과 팥색이 나는 위원석에 각종 문양을 생동감 넘치게 새긴 벼루다.
마치 벼루에 색을 입힌 듯 벼루의 소재가 된 돌이 녹색과 갈색 층을 이룬다.
검은빛의 보령 남포석 벼루는 정약용이 으뜸으로 꼽은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출품작으로는 1973년 창덕궁 '명연전'에서 최고 작품으로 뽑혔으며 한때 화가 김종학이 소장했던 이력이 있는 '정조대왕사은연'을 비롯해 '위원화초석 매죽묵일월대연', '남포석 장생문대연' 등이 있다.
전시 작품들은 대부분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 시대에 제작됐다.
벼루를 사용하는 곳은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뿐이다.
시인은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옛 벼루를 으뜸으로 꼽고, 특히 위원화초석 벼루와 남포석 벼루를 아낀다.
15일 전시장에서 만난 시인은 "벼루는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농부에게 논과 밭이 있어야 하듯이 선비들은 벼루가 있어야 글 농사를 짓는다""라며 "선비는 세수를 안 해도 벼루는 씻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수집한 벼루의 70~80%는 해외에서 구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벼루가 임진왜란 등을 통해 외국으로 대거 유출됐고, 임진왜란 이후엔 국내에서 이전과 같은 수준의 벼루가 나오지 않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시인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삼키러 온 일본은 문화도 훔쳐 갈 생각을 했다"라며 "그때 벼루도 다 훔쳐서 갔고, 벼루 도공까지 잡아가 우리 벼루의 씨가 말랐다"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 사용하거나 공신들에게 하사한 특별한 벼루가 정작 국내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조선 벼루의 정밀하고 예술적인 문양 등을 놓고 일본에서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벼루가 그만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시인은 포도잎 잎맥이 생생한 벼루를 가리키며 "도장에 이름 석 자를 파도 몇 시간이 걸리는데 세상 어떤 작가가 이렇게 세밀하게 생생하게 조각할 수 있겠느냐"라며 "한국 벼루는 청자, 백자 못지않은 우리의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이어 "벼루가 전시된 박물관 등에 갈 때 혹시 내 벼루보다 뛰어난 게 있을까 하는 기대와 내 벼루보다 뛰어난 벼루가 있으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이 교차한다"라며 "아직 내 벼루보다 좋은 벼루를 못 봤다.
그동안 여러 제의가 있었지만 절대 팔지 않았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전시는 27일까지.
/연합뉴스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인 이근배(81) 시인의 시 '세연-벼루읽기' 중 일부다.
소문난 벼루 수집가인 시인의 벼루 사랑과 벼루 수집에 대한 열정이 나타난다.
할아버지의 남포석 벼루를 보며 자란 기억으로 벼루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수집해온 시인은 벼루를 1천점 이상 소장하고 있다.
벼루에 관해 쓴 연작시만 80여편에 이른다.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6일 개막하는 이근배 시인 등단 60주년 기념 한국 옛 벼루 소장품전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는 시인이 반평생 수집한 벼루를 공개하는 자리다.
시인의 방대한 벼루 컬렉션 중에서 위원화초석 벼루 60여점, 남포석 벼루 40여점 등 엄선한 10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 작품들은 예술적인 조각품으로 벼루를 다시 보게 한다.
위원화초석 벼루는 녹두색과 팥색이 나는 위원석에 각종 문양을 생동감 넘치게 새긴 벼루다.
마치 벼루에 색을 입힌 듯 벼루의 소재가 된 돌이 녹색과 갈색 층을 이룬다.
검은빛의 보령 남포석 벼루는 정약용이 으뜸으로 꼽은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출품작으로는 1973년 창덕궁 '명연전'에서 최고 작품으로 뽑혔으며 한때 화가 김종학이 소장했던 이력이 있는 '정조대왕사은연'을 비롯해 '위원화초석 매죽묵일월대연', '남포석 장생문대연' 등이 있다.
전시 작품들은 대부분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 시대에 제작됐다.
벼루를 사용하는 곳은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뿐이다.
시인은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옛 벼루를 으뜸으로 꼽고, 특히 위원화초석 벼루와 남포석 벼루를 아낀다.
15일 전시장에서 만난 시인은 "벼루는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농부에게 논과 밭이 있어야 하듯이 선비들은 벼루가 있어야 글 농사를 짓는다""라며 "선비는 세수를 안 해도 벼루는 씻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수집한 벼루의 70~80%는 해외에서 구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벼루가 임진왜란 등을 통해 외국으로 대거 유출됐고, 임진왜란 이후엔 국내에서 이전과 같은 수준의 벼루가 나오지 않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시인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삼키러 온 일본은 문화도 훔쳐 갈 생각을 했다"라며 "그때 벼루도 다 훔쳐서 갔고, 벼루 도공까지 잡아가 우리 벼루의 씨가 말랐다"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 사용하거나 공신들에게 하사한 특별한 벼루가 정작 국내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조선 벼루의 정밀하고 예술적인 문양 등을 놓고 일본에서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벼루가 그만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시인은 포도잎 잎맥이 생생한 벼루를 가리키며 "도장에 이름 석 자를 파도 몇 시간이 걸리는데 세상 어떤 작가가 이렇게 세밀하게 생생하게 조각할 수 있겠느냐"라며 "한국 벼루는 청자, 백자 못지않은 우리의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이어 "벼루가 전시된 박물관 등에 갈 때 혹시 내 벼루보다 뛰어난 게 있을까 하는 기대와 내 벼루보다 뛰어난 벼루가 있으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이 교차한다"라며 "아직 내 벼루보다 좋은 벼루를 못 봤다.
그동안 여러 제의가 있었지만 절대 팔지 않았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전시는 27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