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의 진단과정에서 확진에 필요한 객관적인 척도는 아밀로이드(A·amyloid), 타우(T·tau), 신경퇴행(N·neurodegeneration) 등의 세 가지다.

가장 보편적인 미국 국립신경학장애 및 뇌졸중연구소 알츠하이머 및 연관장애협회(NINCDS-ADRDA)의 알츠하이머 기준에 의하면,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이 각각 축적해야 하고 신경퇴행에 의한 뇌위축증과 인지기능 저하가 관찰돼야 한다.

이 진단 기준은 부검 또는 생검을 통하여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의 뇌조직 내 축적을 관찰한 후 확진을 하는 규정이 발표된 1984년을 시작으로 2011년에 한 번 개정된 후 2018년도에 ATN(아밀로이드·타우·신경 퇴행)을 제시하게 됐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한계, 뇌손상 회복
그렇다면 약물 등 치료를 통해 알츠하이머병이 ‘나았다’라는 진단을 받으려면 어떤 척도의 변화가 필요할까. 진단법 기준으로, ATN 중 한 가지 이상의 요소가 정상화돼야 한다. 축적돼 있던 아밀로이드 베타 또는 타우 응 집체가 뇌에서 제거되거나 신경퇴행이 회복되는 결과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중 약물 치료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요소가 신경퇴행(N)의 회복이다. 이미 뇌세포가 파괴돼 뇌 가 작아진 상태에서, 재생의학을 통해 파괴된 뇌세포를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되살려 놓는 방법과 ‘신생’ 뇌세포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전임’ 뇌세포의 역할을 동일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이 동반돼야 망가진 뇌가 복원됐다고 볼 수 있다.

전자는 현대 의·약학 기술로 가능한 접근법이지만 후자는 아직 뇌신경회로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 ‘귀ʼ와 같은 인체기관을 재생의학기술로 복원한다는 뉴스는 종종 접하고 있지만, 뇌를 복원하는 기술은 아직 성공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알츠하이머병의 신약 개발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에서 희망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치료 효과(인지기능의 정상화)가 신약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요소(아밀로이드 베타 응집, 타우 응집, 신경독성, 신경염 증 등의 정상화)와 일치하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병의 신약 개발 전략과 한계는 전쟁 상황에 빗대어 설명이 가능하다. 적군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문화를 주도하는 수도 서울에 침투해 다양한 무기로 인프라를 파괴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시점에서 우선시되어야 할 대응방안은 무엇일까.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적군의 기지에 아군을 보내 추가적인 적군의 양산과 침투를 막는다. 둘째는 수도 서울을 파괴하고 있는 적군과 교전해 전쟁의 피해를 최소 화한다.

전략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떻게든 서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서울의 기능을 되돌려야 한다면, 후자의 대응방안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끝났다고 파괴된 서울의 인프라가 자동으로 복원되는 것 또한 아니다. 많은 시간, 노력, 자원을 동원해 복원해야만 전쟁 이전의 수도 서울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아밀로이드 베타·타우 단백질 응집)이 적군이고 다양한 병리기전이 적군의 무기와 전술에 해당하며 환자의 뇌가 전쟁을 겪고 있는 수도 서울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알츠하이머병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아밀로이드 베타 응집체와 타우 단백질 응집체를 뇌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전쟁과 알츠하이머병의 차이는 복원 여부다. 인간은 파괴된 건물을 복원할 수 있는 기술 력은 있지만 아직 뇌세포와 회로망을 재생할 수 있는 의료기술을 갖추지는 못했다. A와 T를 정상화해 알츠하이머병을 끝내도 N은 정상화되기 힘들다.

그래서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을 바라볼 때, 인지기능은 악화만 방지되는 수준을 기대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뇌세포가 파괴되지 않고 활성만 억제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약간의 인지기능 개선은 나타날 수 있다.

아밀로이드 베타 타깃 신약 실패로 얻은 값진 정보
알츠하이머병 신약후보물질 중 글로벌 임상 시험을 통과한 물질은 총 4종으로 2003년 승인된 메만틴이 끝이다.

그나마 승인된 약물 4종은 모두 대증적 약물로 인지기능 개선과 질환의 진행을 조금 지연시켜주는 효과가 있는 수준으로, 알츠하이머병을 끝낼 수 있는 질병 조절치료제는 성공사례가 전무하다.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 성공률은 0%인 셈이다. 실패한 수많은 약물 중 절반 이상이 아밀로이드 베타를 조절하는 기전이었기 때문인지, 알츠하이머병 신약 실패의 책임은 늘 대표 기전인 아밀로이드 가설의 몫이다.

일반인이 보기엔 이미 아밀로이드 베타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볼장 다 본ʼ 단백질 타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아밀로이드 전구체 단백질에서 아밀로이드 베타가 생성되는 기전, 아밀로이드 베타가 응집하는 기전, 아밀로이드 베타가 세포를 죽이는 기전, 아밀로이드 베타가 혈액에서 뇌로 이동하는 기전,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기전 등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이 단백질을 요리해봤지만 임상에서 효과를 나타낸 약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지난 6월 7일 아두카누맙이 FDA의 승인을 받았으니, 이제 하나의 성공 사례가 나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아밀로이드 가설은 실패한 가설일까. 이제 아밀로이드 베타는 접어두고 다른 타깃을 찾아야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다른 타깃의 약물 개발도 필요하지만, 아밀로이드 베타 표적 신약 개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행히 그동안 실패한 수많은 신약후보물질의 희생 덕분에 유용한 정보를 얻어냈다.

첫째, 아밀로이드 베타의 응집과 축적은 인지기능 저하 증상 발현보다 10~20년 정도 앞서서 시작되기 때문에, 아밀로이드 베타 생성·응집을 억제하려던 기존 수많은 후보물질은 사실 치료보다는 예방에 더 적합하다. 인지기능 저하가 관찰되기 전에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은 극소수의 유전질환 케이스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환자는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많이 쌓이고 타우도 많이 쌓인 후 첫 치료를 받는다. 이미 뇌가 정상기능을 할 수 있는 한계점 아래까지 파괴돼 증상이 나타난 시점이다.
이 시점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또는 타우 단백질의 생성, 과인산화, 응집을 억제하는 기전의 약물은 한창 적군이 수도 서울을 파괴하고 있을 때 교전은 하지 않고 적군의 본부로 날아가 신병 훈련소를 파괴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물론 추가로 만들어지는 단백질 응집체의 생성도 막아야겠지만, 일단은 이미 만들어져서 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또는 타우) 응집체부터 뇌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야 아밀로이드 제거(amyloid clearance)의 임상 단계 개념 증명이 완료됐다.

얼마 전 FDA의 승인을 받은 바이오젠의 아두카누맙은 2016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표지에 당당히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쌓여 있던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대부분 제거한 뇌영상 자료를 발표했다. 앞서 언급한 ATN 중 A가 정상화됐다. NINCDS-ADRDA의 알츠하이머병 기준에 기반하면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아니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발됐던 수많은 아밀로이드 베타 타깃 신약후보물질 중 환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통계적 유의성 계산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현저히 제거해준 약물은 그전에는 없었다.

둘째, 아밀로이드 베타 올리고머를 공략해야 한다. 아두카누맙의 앞에는 수많은 선배 항아밀로이드 항체 신약후보약물이 있었고 모두 임상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전 후보 물질의 단점은 항체를 개발할 때 아밀로이드 베타를 항원으로 사용하였으나 모노머(monomer), 올리고머(oligomer), 플라크(plaque)라는 아밀로이드 베타 응집과정에서 나오는 각기 다른 결과물에 대한 선택성이 부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밀로이드 베타 모노머는 신경독성이 없고 일반인도 어느 정도 수준의 양을 늘 뇌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분명히 우리 뇌 기능에 필요한 단백질일 것으로 고려된다. 다만,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특이적으로 아밀로이드 베타가 뭉쳐 올리고머가 되어 매우 높은 독성이 나타나게 되고, 이를 거쳐 더 큰 형태인 플라크로 뇌조직에 축적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아두카누맙은 플라크의 거의 대부분을, 올리고머의 약 50%를 뇌에서 제거한다는 결과를 알츠하이머 형질전환 마우스 시험에서 보여줬다. 아두카누맙의 임상 전반에서 플라크를 효과적으로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 기능 저하가 개선되거나 멈추지 못하고 악화한 일부 임상 결과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예측해볼 수 있다.

플라크보다 올리고머가 뇌세포 파괴에 이은 뇌위축증에 더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이 됐다. 따라서 아두카누맙이 플라크를 제거하는 효과에 비해 올리고머를 제거하는 효과가 낮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물론 환자의 뇌에서 올리고머가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는 공개된 바 없고 기술적으로 측정도 거의 불가한 게 현실이다.
플라크와 올리고머를 뇌에서 제거할 때는 완벽하게 모노머로 분해할 필요가 있다. 어설프게 플라크와 올리고머를 제거하다가 작은 크기의 독성 올리고머를 많이 만들어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핵의학적 영상 기술인 양전자단층촬영(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용 아밀로이드 방사성 트레이서가 개발되면서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를 분석할 수 있게 됐고 질환을 이해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다만 환자의 뇌에 존재하는 아밀로이드 베타·올리고머의 동정은 PET 영상으로는 알 수 없고 병리학적 뇌조직 염색으로도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분석·진단 기술의 개발이 절실하다.

합성신약 비중 줄고 있지만 반드시 필요한 영역
셋째, 항체 신약을 대체할 합성신약이 필요하다. 알츠하이머병 신약후보물질 중 면역치료(항체 또는 백신)가 등장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노인성 뇌질환의 신약 개발에 있어서 합성신약의 상대적으로 높은 뇌혈관장벽 (BBB) 투과율, 낮은 생산단가와 안정성, 경구투약 가능성은 포기하기 힘든 장점이다. 은퇴한 고령인구가 겪는 이 질환의 치료제는 소지와 투약이 용이하고 가능하면 값도 저렴해야 한다.

하지만 환자의 뇌에서 없애야 할 아밀로이드 베타(그리고 타우)의 응집체는 워낙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여 알려진 단백질 구조 정보가 없고 이는 합성신약 설계에 커다란 장애 요소다.
아밀로이드 베타 표적 신약 개발의 방향성이 단백질의 생성·응집 저해에서 제거로 이동하면서 합성신약 후보물질의 비중이 글로벌 임상에 진입한 파이프라인에서 점점 사라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신약 개발에 극저온전자현미경(Cryo- TEM),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단백질 분석 기술이 도입되고 있기 때문에 아밀로이드 베타와 같은 응집성 단백질, 통칭 아밀로이드 구조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타깃 단백질의 구조가 불분명하더라도 아밀로이드 제거(clearance) 약효 평가 시스템을 개발하여 ‘unbiased screening’ 접근법으로 선도물질을 찾고, 우수한 유도체를 도출하는 접근법으로 충분히 아밀로이드 제거 기전의 합성신약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은 ATN이다. 알츠하이머병을 정의하는 바이오마커가 정상화돼야 알츠하이머병이 치료됐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다양한 기전의 알츠하이머병 신약후보물질이 개발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가 아밀로이드 베타 모델 또는 타우 모델에서 ATN이 조절되는가를 약효 평가의 지표로 보기 때문에, 현재의 신약 타깃 다변화 추세는 아밀로이드 가설의 실패를 방증하는 것이 아니라 아밀로이드 가설의 확장이라고 봐야 맞다.

아밀로이드와 타우 중 어느 단백질이 더 중 요한지에 대한 논쟁도 최근에는 ‘둘 다’ 중요하고 동시에 조절돼야 할 것 같다는 합의점에 이르고 있다. 아밀로이드만 응집하거나 타우만 응집하면 알츠하이머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타우의 과인산화와 응집현상은 알츠하이머병 이외에도 다양한 뇌질환에서 발견되지만, 아밀로이드 베타의 응집현상은 알츠하이머병 특이적이라는 점도 알츠하이머병에서 아밀로이드 베타를 반드시 조절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저자 소개>

김영수

알츠하이머병 신약과 진단기술 분야 전문가로 미국 뉴욕대학교(생화학 학사)와 스크립스연구소(화학 박사)를 졸업한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2006~2017) 책임연구원을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 약학대학 전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아밀로이드솔루션(주) CSO,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 회원, 대한퇴행성신경질환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