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직후 매뉴얼대로 분리 조치 안된 듯…"상관들 번갈아 가며 합의 종용" 성추행 피해 신고 후 끝내 죽음을 택한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 A 중사의 유족 측 변호인은 1일 공군본부가 합동수사에 착수한 것과 관련, "사안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데 사망 후 열흘이 걸렸다는 게 군이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유족 측 변호사인 김정환 변호사는 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사망 직후에도 유가족이 소속 부대가 아닌 공군본부 차원에서 수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못 해주겠다고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공군은 앞서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공군법무실장을 팀장으로 하고 군검찰·군사경찰로 합동전담팀을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된 22일을 기준으로 약 열흘 만이다.
김 변호사는 "강제추행 피해자가 사망했다면 왜 사망에 이르게 됐는지, 놓치고 있는 게 없는지 등 확인해야 했다"며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수사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군 당국이 지난 3월 초 A 중사가 피해 사실을 즉각 신고한 이후 줄곧 가해자인 B 중사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해온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주요 목격자와 관련 인원들이 모두 같은 부대"라며 "도주 및 증거인멸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구속을 못 한다는 거 자체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A 중사는 당시 B 중사를 포함한 동료 부대원들과 저녁 자리를 갔다가 귀가하는 차 안에서 강제추행을 당했다.
당시 차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운전하던 후임 부사관도 있었다.
모두 같은 부대 소속이다.
유족들은 20전투비행단 측이 피해 신고에도 가해자 대기발령 등 분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에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A 중사가 피해 직후 상관에게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알렸지만, 상부 보고 대신 합의 종용을 당했다는 것이다.
가해 당사자인 B 중사가 '협박'을 한 것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나서 무마해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군내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에 따르면 피해자의 상담·신고 시 '가해자와 즉시 분리' 등 조치가 이뤄지도록 규정돼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A 중사는 피해 이틀 뒤 청원휴가를 나갔는데, 그 사이 약 이틀간의 '공백'이 있던 셈이다.
유족들은 이 과정에서 오히려 고인이 '조직적 회유'를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물리적 분리'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고를 했는데 (상관인) 준위와 상사가 번갈아 가며 합의해주면 안 되냐고 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추행의 정도가 경미하지 않고, 사망에 이른 경우도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경위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라며 "더 충격적인 건 같은 군인인 남편에게까지 합의를 종용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피해를 신고한 뒤에도 압박감에 시달리던 A 중사는 지난달 18일 전속 요청이 받아들여져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옮겼으나, 나흘 만인 같은 달 22일 오전 부대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편,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이날 오후 유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고 면담하기 위해 고인이 안치된 경기도 성남의 모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지만, A 중사 아버지의 거부로 면담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 변호사는 "지금 만날 이유가 없다"며 "우리는 일단 수사가 엄정하게 되는 것만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이번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직접 유가족들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