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피해견 물어 죽일 고의 인정 어려워…재물손괴죄 무죄"
소형견 물어 죽인 로트와일러 견주 1심 벌금 600만원(종합)
산책하던 소형견 스피츠를 물어 죽게 하고 그 견주를 다치게 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맹견 로트와일러 견주 이모(76)씨에게 1심에서 벌금형이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정금영 판사는 26일 동물보호법 위반·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에게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동물보호법 위반에 대해선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보강증거도 있어 유죄가 인정된다"며 "다만 재물손괴죄에 해당하는 공소사실은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지난해 7월 25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주택가에서 로트와일러에게 입마개를 씌우지 않고 방치해 산책 중인 스피츠를 물어 죽게 하고 그 견주를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피해 견주는 로트와일러에게 손을 물리는 등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이씨 소유의 로트와일러가 피해 견주에게 상해를 입힌 점은 동물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

다만 로트와일러가 스피츠를 물어 죽인 데 따른 재물손괴죄는 과실범 처벌 조항이 없으므로 피고인의 고의가 입증돼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이씨는 그동안 법정에서 "산책 준비 과정에서 로트와일러에게 입마개를 씌우려던 중 갑자기 스피츠를 발견하고 뛰쳐나가 목줄을 놓쳤다.

다른 개를 물어 죽이도록 할 고의는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사건 당일 가해견이 목줄을 차고 있었고, 피고인이 당시 스피츠가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토대로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맹견이 거주하기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무리하게 맹견을 키워와 그간 3회에 걸쳐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타인의 안전을 위한 진지한 배려 없이 행동해 범행까지 이르게 됐다"며 "이 사건은 피고인의 집행유예 기간 중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상해의 적극적인 고의가 없었고,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중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처럼 동물이 동물을 해친 경우, 가해 동물 보호자의 고의를 입증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이 어려워 민법상 배상 규정이 구체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피엔알 박주연 변호사는 "민법상 동물은 물건과 동일하게 취급돼 가족과 같은 반려동물을 잃어도 손해배상액이 소액만 인정되고 있다"며 "동물을 물건과는 다른 특별한 지위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민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런 사고로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도 정신적 충격이 큰 만큼 정신적 위자료 등 규정을 민법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