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인도네시아 팜유 산업에 대해 일관성 없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을 적용해 뭇매를 맞고 있다.

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블랙록은 지난해 10월 세계 최대 생필품 제조업체인 프록터앤드갬블(P&G) 투자자들이 P&G의 인도네시아산 팜유 및 목재펄프 공급망을 비판하는 주주제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주주제안은 P&G의 바운티 페이퍼타월과 차민 화장지 등 대표 제품들에 쓰이는 팜유와 목재펄프가 어떻게 조달되는지, 삼림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공개하라는 압박으로, 찬성률이 67%에 달했다. 블랙록은 P&G 지분 6.6%를 가진 2대 주주다.

이후 P&G는 원재료 공급사 측에 인도네시아 팜유 생산기업인 아스트라 아그로 레스타리(아스트라인터내셔널의 자회사)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인도네시아 재벌 그룹인 아스트라는 환경보호 조치가 미흡한 점뿐만 아니라 지역농민들의 토지를 강탈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블랙록은 3억5000만달러(약3940억원)에 달하는 아스트라인터내셔널 지분을 획득하고 있는 3대 주주다. 동시에 아스트라 아그로 레스타리 소수지분도 보유하고 있는 직접 투자자다. 그런데도 블랙록은 아스트라를 상대로 한 환경 기록 공개 압박에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운동가들이 “블랙록의 ESG 투자 접근법에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는 이유다.


지속가능투자 운동가인 라라 쿠벨리어는 “블랙록이 P&G에게 밸류체인을 깨끗이하라고 압박하면서 한편으로는 해당 밸류체인의 한 기업에서 계속 투자수익을 얻고 있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FT는 “이번 사태는 자산운용업계에서 급속도로 성장 중인 ESG 투자와 씨름하는 대형 투자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패시브투자자인 블랙록은 액티브투자자들과 달리 투자기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즉각 지분을 매도하거나 펀드를 교체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블랙록은 “투자기업 이사회와 물밑 대화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회운동가들은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투자회수 같은 ‘최종 제재’를 발동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블랙록의 운용자산은 지난해 12월 기준 8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블랙록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기업에 주주권을 행사한 건수는 2019년 238건에서 지난해 458건으로 92.4% 급증했다.

김리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