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한 종근당 회장 "위기를 기회로 바꾼 DNA…종근당 80년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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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창의력 발휘
韓 대표 헬스케어기업 되자"
韓 대표 헬스케어기업 되자"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장해온 게 종근당의 DNA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100% 발휘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제약기업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을 겁니다.”
7일 창립 80주년을 맞은 종근당은 ‘팔순 잔치’를 온라인에서 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임직원이 모여 함께 생일을 축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도 PC 모니터를 통해 임직원과 만나야 했다.
이 회장이 이날 임직원에게 건넨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제약기업에 꼭 필요한 창의력과 창조성을 끌어올리려면 조직 전체적으로 자유와 자율적 사고가 확산돼야 한다는 게 첫 번째였다. 이 회장은 “창의력과 창조성의 전제는 자유에 있다”며 “자유는 자율적 사고의 원천이 되고 자율적 사고는 다시 창의력과 창조성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두 번째는 종근당 80년 역사에 대한 소회와 당부였다. 이 회장은 “지난 80년 동안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장해온 것은 종근당의 자부심이자 고유의 DNA가 됐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런 종근당의 DNA를 100% 발휘하면 인류 건강을 지키는 제약기업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규정한 종근당의 DNA는 이날 선포한 새로운 비전인 ‘창조적인 K헬스케어 DNA(Creative K-healthcare DNA)’에도 들어갔다. 종근당의 영문 이니셜 ‘CKD’를 활용해 이 회장이 강조해온 △창의력 있는 제약사 △한국의 대표 헬스케어기업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DNA 등의 키워드를 담았다.
종근당의 모태는 1941년 창업주 고촌 이종근 회장이 세운 궁본약방이다. 제약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던 1960년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원료합성 발효공장을 건립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72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종근당이었다.
2세 경영자인 이 회장이 취임한 때는 1993년이다. 창업주가 제약사로서의 기틀을 닦는 데 주력했다면 이 회장은 종근당의 덩치를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것에 힘을 쏟았다. 이 덕분에 취임 당시 1085억원(연결 재무제표 기준)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2조3381억원으로 21배 커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53억원에서 2890억원으로 19배 불었다.
이날 행사에서 ‘외부인의 시각으로 본 종근당의 위상’을 주제로 발표한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종근당은 국내에 제약주권과 약업보국의 가치를 심은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오상헌 기자
7일 창립 80주년을 맞은 종근당은 ‘팔순 잔치’를 온라인에서 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임직원이 모여 함께 생일을 축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도 PC 모니터를 통해 임직원과 만나야 했다.
이 회장이 이날 임직원에게 건넨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제약기업에 꼭 필요한 창의력과 창조성을 끌어올리려면 조직 전체적으로 자유와 자율적 사고가 확산돼야 한다는 게 첫 번째였다. 이 회장은 “창의력과 창조성의 전제는 자유에 있다”며 “자유는 자율적 사고의 원천이 되고 자율적 사고는 다시 창의력과 창조성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두 번째는 종근당 80년 역사에 대한 소회와 당부였다. 이 회장은 “지난 80년 동안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장해온 것은 종근당의 자부심이자 고유의 DNA가 됐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런 종근당의 DNA를 100% 발휘하면 인류 건강을 지키는 제약기업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규정한 종근당의 DNA는 이날 선포한 새로운 비전인 ‘창조적인 K헬스케어 DNA(Creative K-healthcare DNA)’에도 들어갔다. 종근당의 영문 이니셜 ‘CKD’를 활용해 이 회장이 강조해온 △창의력 있는 제약사 △한국의 대표 헬스케어기업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DNA 등의 키워드를 담았다.
종근당의 모태는 1941년 창업주 고촌 이종근 회장이 세운 궁본약방이다. 제약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던 1960년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원료합성 발효공장을 건립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72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종근당이었다.
2세 경영자인 이 회장이 취임한 때는 1993년이다. 창업주가 제약사로서의 기틀을 닦는 데 주력했다면 이 회장은 종근당의 덩치를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것에 힘을 쏟았다. 이 덕분에 취임 당시 1085억원(연결 재무제표 기준)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2조3381억원으로 21배 커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53억원에서 2890억원으로 19배 불었다.
이날 행사에서 ‘외부인의 시각으로 본 종근당의 위상’을 주제로 발표한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종근당은 국내에 제약주권과 약업보국의 가치를 심은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오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