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통념 깬 의사들이 일군 '인류 질병 극복史'
르네상스 시대까지 의학은 철학에 가까웠다. 의사들은 ‘세상 만물의 원리’를 통해 모든 질병을 설명했고 이 원리만 바로잡으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이후 2000년 가까이 지배했다. 하지만 16세기 스위스 의학자 파라켈수스는 이런 당대 주류 의학에 반기를 들었다. 의학은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며 직접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질병을 분류하고 규명해 환자를 치료하라고 주장했다. 냉정한 과학기술에 가까운 현대 의학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진정한 의학은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겨우 힘을 발휘했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사와 의학자가 비과학적인 주류 의학 체제에 반항하고 싸웠다. 곽경훈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반항하는 의사》에서 진정한 의학의 아버지 파라켈수스부터 20세기 후반에 활약한 의료행정가 에버렛 쿱까지 12명의 반항하는 의사들을 소개한다. 이들의 분투를 통해 의학이 본격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세기 헝가리의 산과의사였던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는 손 씻기의 중요성을 강조해 산욕열에 의한 산모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하지만 의사의 더러운 손이 산욕열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의사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배척당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주치의였던 존 스노는 19세기 중반 런던 콜레라 대유행 당시 세계 최초로 근대적 의미의 ‘역학조사’를 해 오염된 물이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전염병은 신의 뜻이라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공용 펌프를 폐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강한 반발을 샀다.

19세기 독일 의학자 파울 에를리히는 화학물질로 질병을 치료하는 화학요법을 처음 제시했다. 건강한 세포에는 해를 끼치지 않고 세균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마법의 탄환’이란 개념을 처음 사용한 이도 에를리히다. 그러나 주류 의학계는 매우 위험한 독약이라며 그를 비난했다. 소수파를 자처하며 다수의 공론과 다른 주장을 편 이들 덕분에 의학은 발전했고 인류는 질병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