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임' 이후 10년만에 두번째 뮤지컬 무대…"연습하면서 많이 울어"
"아티스트로서 전환점 돼준 작품… 스토리텔러로 인정받고 싶어"
1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가수 겸 배우 티파니 영(32)은 검은 의상에 짙은 빨간 립스틱을 바른 영락없는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 하트' 모습이었다.

강렬한 겉모습과 달리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일어나 꾸벅 인사부터 하는 싹싹함이나 특유의 반달 눈웃음은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간절했던 오디션부터 힘들었던 연습, 그리고 무대에 서기까지 숨겨뒀던 이야기를 하나둘씩 털어놓을 때는 한층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배우에 대한 꿈을 너무 오랫동안 갖고 있었어요.

시즌마다 오디션 리스트가 오는데, 많은 작품 중에서 '시카고'가 1순위였어요.

30대를 배우로서 오픈하는 작품이 '시카고'면 너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록시는 여배우라면 너무 꿈꾸는 역할이잖아요.

"
티파니가 연기하는 록시는 불륜남을 살해한 코러스 걸이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세상의 관심과 인기를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는 캐릭터다.

2007년 소녀시대로 데뷔해 오랜 시간 아이돌 생활을 해왔던 그로서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20대 때 록시의 마음에 너무 공감했어요.

그래서 이 작품에 푹 빠져든 것 같아요.

인기라는 게 많았다가 적었다가 하잖아요.

이런 걸 30대가 돼서야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꼭 연예인이 아니라도 원하는 대학교나 회사에 들어가려고 계속 시도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다들 본능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니까요.

보면 볼수록 모두의 이야기란 생각이 들어요.

"
티파니가 뮤지컬 무대에 선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1년 뮤지컬 '페임'에서 유명한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여학생 카르멘 디아즈 역을 맡았었다.

다시 뮤지컬을 하기까지 10년이 걸린 데는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시점을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0년 전과는 대본, 곡 등에 대한 이해력이 아주 다르다"며 "몇 년 동안 연기 공부를 했고, 트레이닝을 받고 처음 하는 작품이라 그런지 흡수력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티파니는 배우로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지만, '시카고' 오디션 때는 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 많이 긴장하고 떨렸다고 했다.

"오디션 때가 가장 긴장됐어요.

'더 보여드릴 것 없을까요'라며 뒷걸음치면서 안 나가려고 버티기도 했죠. (오디션이 끝나고는) 매일 핸드폰을 쳐다보면서 언제 연락이 오나 했어요.

'잘했어'라는 마음과 '못해서 안 된 거야'라는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왔다 갔다 했어요.

"
그렇게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새로운 록시로 선발됐지만, 연습은 녹록지 않았다.

연습 일정 자체는 소녀시대 데뷔 전 연습생 생활을 한 덕분에 수월했지만, 욕심만큼 따라주지 않는 실력이 속상했다고 했다.

"숨어서도 울고, 배우들 앞에서도 울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2막 법정 신(Scene)은 팀워크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나 때문에 이 신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울음이 터지기도 했어요.

머리로는 영어를 번역기로 돌리고 있는데 춤도 춰야 하고, 선배님한테 리액션도 해야 했죠."
그럴 때마다 선배인 최정원, 아이비 등 동료들이 힘이 됐다.

같은 역할을 맡은 선배 아이비는 같이 울기도 하고, 옆에서 연기를 지도해줬다고 했다.

상대 역이자 대선배인 최정원은 '최선을 다했으면 잘 한 거다'라며 다독여줬다고 전했다.

물론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이 상처가 되기도 했다.

2017년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면서 티파니 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아직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의 모습이 익숙하다.

"상처는 늘 받죠. 어떻게 안 받겠어요.

상담 치료도 많이 받았고, 이제 건강한 평가는 받아들여요.

저만큼 '고칠까요'라고 묻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제 최고의 장점이죠. 이제는 아프게 하면 아파해요.

정말 그런지 한번 체크하고, 아니라면 털고 일어나는 거죠."
그는 뮤지컬 배우로서 자신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냐는 질문에도 "지금의 티파니에게는 A를 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최고 점수 주세요"라며 애교 있게 웃어 보였다.

티파니는 자신이 연기하는 록시의 매력으로 '순수함'을 꼽았다.

이번 시즌은 5번째 '시카고' 무대에 서는 아이비와 새롭게 합류한 민경아가 티파니와 함께 록시를 연기하고 있다.

"가장 순수한 록시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연출님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록시가 탄생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꾸미거나 끼를 부리면 록시가 밉더라고요.

그래서 '노 기름', '노 끼'로 순수하게 다가가다 보니 엉뚱한 매력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아이비 언니가 정말 색다른 록시가 나온 것 같다고 말해줬는데 기분 좋은 칭찬이었어요.

"
티파니는 가장 하고 싶었던 역인 록시를 해봤으니 앞으로 '지킬 앤드 하이드'의 루시, '위키드'의 글린다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또 '맘마미아' 무대에 선 적 있는 소녀시대 멤버 서현과도 뮤지컬에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언급했다.

"'시카고'는 저에게 아티스트로서 전환점이 돼준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티파니는 라이트한 것뿐만 아니라 다크한 것도 할 줄 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티파니 잘 하잖아' 이런 평가를 받고 싶죠. 예전에는 3분 정도의 무대였다면 이제는 2시간 넘는 작품을 끌고 가야 하잖아요.

스토리텔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