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5조 실탄 쥔 쿠팡에 ‘삼각 동맹’ 맞대응...이베이 인수에 명운 건 롯데·MBK

[스패셜리포트]
이커머스업계가 격랑에 빠져들었다. 3월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은 이 과정에서 조달한 자금을 활용해 공격적인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맞서 네이버는 신세계·CJ와 손잡았다. 이커머스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기 위한 전략을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수·합병(M&A) 움직임도 뜨겁다. 업계 최강자 중 하나인 이베이코리아가 매물로 등장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인수전 결과에 따라 시장의 판세가 단숨에 뒤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후에 웃는 승자는 과연 누가 될지 이목이 쏠린다.
김범석 쿠팡 의장. 쿠팡은 뉴욕증시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한국 이커머스 시장 공략을 위한 물류 인프라 확충에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범석 쿠팡 의장. 쿠팡은 뉴욕증시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한국 이커머스 시장 공략을 위한 물류 인프라 확충에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점유율 30%를 누가 먼저 가져가느냐가 관건이다.” 한국의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들이 예상하는 ‘승자의 조건’이다. 한국 시장의 상황을 고려할 때 매년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선 최소한 이 정도의 점유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 가장 먼저 점유율 30%를 넘어서는 기업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강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아마존이 좋은 본보기다. 1위 사업자라는 후광에 힘입어 아마존을 찾는 소비자들은 계속 늘고 있다. 수치가 이를 잘 말해 준다. 2016년 30% 초반이었던 점유율은 지난해 약 47%까지 치솟았다. 올해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규모의 경제를 가장 먼저 달성한 아마존은 창출된 이익을 다시 기업 성장을 위한 투자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며 경쟁사들과 격차를 계속 벌리고 있다.
‘점유율 30% 잡아라’…온라인 쇼핑 최후 전쟁
한국의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이 그리고 있는 미래 청사진 역시 이런 모습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아마존처럼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이유다. 누가 승자가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절대 강자는 아직 없다.

선두권 업체들의 점유율이 약 10% 중반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현재 상황을 놓고 볼 때 이른바 ‘한국판 아마존’에 가장 근접한 기업은 단연 쿠팡이 첫손에 꼽힌다.
‘점유율 30% 잡아라’…온라인 쇼핑 최후 전쟁
쿠팡, ‘한국판 아마존’ 향한 질주 본격화

‘시가총액 약 95조원(4월 1일 기준).’ 쿠팡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어떤지 엿볼 수 있는 숫자다. 한국 증시로 놓고 보면 삼성전자(약 491조원)와 SK하이닉스(약 100조원)에 이은 3위 규모다. 소위 ‘유통 공룡’으로 불리는 롯데쇼핑 시총(약 3조5000억원)의 30배를 웃돈다.

이커머스 거래액만 놓고 보면 네이버에 이은 2위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성장 중이라는 점이 한국판 아마존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게 한다. 2010년 설립돼 불과 10여 년 만에 거래액 20조원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쿠팡은 한국 이커머스 기업 최초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면서 그간의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투자 여력이 다시 생겼다는 점이 주목된다. 경쟁사들이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쿠팡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수익성’이었다. 늘어나는 매출에 비례해 적자도 같이 불어나는 구조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투자금을 수혈 받을 때마다 쿠팡은 늘 한결같았다. 오로지 익일 배송을 원칙으로 하는 ‘로켓배송’을 더욱 많은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자체 물류 인프라 확충에만 집중했다. 경쟁사 보다 빠른 배송을 최대 무기로 삼은 것이다.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그 결과 쿠팡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문제는 수익이었다.

계속해 물류 시설을 늘리기 위해선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또 물류 시설이 증가할 때마다 이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고정비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결국 쿠팡은 매년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쿠팡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도 증폭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쿠팡 위기설’이 최고조에 이른 한 해였다. 최대 투자자인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비전펀드(약 3조3600억원 투자)가 큰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소프트뱅크의 추가적인 투자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이 빗발쳤다. 운영 자금마저 곧 고갈돼 머지않아 무너질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나왔다.

올해 쿠팡을 보는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우려는 단숨에 기대로 변했다.
‘점유율 30% 잡아라’…온라인 쇼핑 최후 전쟁
기업공개(IPO)를 통해 쿠팡이 확보한 실탄은 약 5조원이다. 다시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쿠팡은 이 자금을 다시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투입할 계획이다.

쿠팡은 현재 전국적으로 30개 도시에 100여 개의 독립된 물류센터를 갖고 있다. 쿠팡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의 70%는 쿠팡 배송센터에서 10km 이내에 거주하고 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조달한 자금을 투입해 추가로 7개 풀필먼트센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쿠팡 관계자는 “물류 공간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투자도 한층 강화해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더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해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불거진 쿠팡의 위기설이 뉴욕 증시 상장을 계기로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며 “쿠팡의 시장 장악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비전펀드의 행보에서도 쿠팡이 더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확인할 수 있다. 비전펀드는 쿠팡의 상장으로 당장 약 20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내며 ‘대박’을 터뜨렸다.

비전펀드의 엑시트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예상을 깨고 당분간 지분을 팔 계획이 없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비전펀드 임원이자 쿠팡 이사회의 일원인 리디아 제트는 쿠팡이 상장한 직후 가진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 시장에서 쿠팡이 더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다”며 “쿠팡의 지분을 장기 보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장을 토대로 주가가 더 상승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네이버 중심 ‘이커머스 동맹’ 출격

이런 쿠팡의 행보에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이커머스업계 1위인 네이버의 최근 이커머스 공략을 위한 발걸음도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네이버와 쿠팡의 전략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쿠팡이 자체 물류에 투자를 확대하는 반면 네이버는 자사의 부족한 부분을 협업으로 보완하며 이커머스 시장 1위를 지켜내고자 한다.

네이버가 물류업계 1위인 CJ대한통운, 오프라인 유통의 최강자인 신세계그룹과 지분 교환을 잇달아 진행하면서 ‘플랫폼-유통-물류’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를 구축한 배경이다.

네이버는 3월 17일 애널리스트들을 초청해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이커머스 전략을 대대적으로 공개해 업계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점유율 30% 잡아라’…온라인 쇼핑 최후 전쟁
2025년까지 시장점유율을 3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네이버는 쿠팡에 맞서 물류 연합군을 결성할 방침이다. 오는 7월 ‘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NFA)’센터를 오픈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류의 주축은 1위 택배사인 CJ대한통운이 맡게 된다. 생필품 중심으로 당일 배송과 익일 배송 등 빠른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마트 역시 점포를 도심형 물류 창고로 활용하며 힘을 보탠다. 점포 인근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면 3시간 내 배송을 완료하는 초스피드 배송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도 갖고 있다.

네이버는 이 밖에 다양한 물류 스타트업과 협력해 명품·가구 등 배송 서비스를 구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쿠팡처럼 유료 회원(플러스 멤버십)에게는 무료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상품군 확대에도 나선다. 예컨대 신세계와 협업해 명품 브랜드 확대를 추진 중이다. 최근 명품 소비가 급증하는 추세를 반영했다. 신세계와 함께 네이버 쇼핑에 ‘럭셔리 부티크관’을 신규 오픈할 예정이다.

네이버·신세계·CJ라는 대기업 외에도 여러 스타트업이 힘을 합쳐 ‘빠른 배송’과 ‘상품 경쟁력 강화’를 예고한 만큼 이커머스업계에 미칠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관건은 이런 동맹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다. 한 업계 전문가의 견해는 이렇다.

우선 네이버와 CJ의 동맹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양 사의 지분 교환은 약 6000억원 규모로 이뤄졌다. 이후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CJ ENM의 주요 주주에 오른 상태다. ‘혈맹’이라도 봐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는 설명이다.

반면 신세계와의 동맹은 언제든 와해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지분 교환 규모(약 2500억원)도 작지만 이번 동맹이 신세계 측의 이커머스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내놓은 분석이다.

“이커머스 기업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플랫폼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신세계 입장에서 보면 네이버와의 동맹은 신세계의 이커머스 플랫폼인 SSG닷컴의 가치를 높이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네이버 장보기를 통해 고객들이 유입되도록 하는 구조로 판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수익이 늘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마트 주가에서도 나타난다. 네이버와의 제휴 발표 이후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베이코리아 인수 향방도 관건

선두 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 계획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의 열기도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 롯데·이마트·SK텔레콤·MBK파트너스 등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이베이코리아가 제시한 몸값 5조 원에 근접한 예비 입찰가를 적어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추후 일정은 이렇다. 5월 초 이베이코리아 실사를 거쳐 5월 말 본입찰 참여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본입찰에 참여한 기업들 중 가장 큰 금액을 제시한 기업이 최종 협상 대상자로 결정된다.

현재 유력 후보는 롯데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거론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 가운데 두 곳의 상황이 가장 절박한 만큼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사활을 걸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전망을 내놓았다.
‘점유율 30% 잡아라’…온라인 쇼핑 최후 전쟁
롯데는 2023년 이커머스 1위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지난해 ‘롯데온(ON)’을 론칭한 상태다. 롯데온의 정확한 실적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기대했던 것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온의 연간 거래액은 약 7조원으로 추정된다. 거래액 20조원을 기록 중인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성공하면 단숨에 선두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형마트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야심차게 인수했던 홈플러스의 실적은 추락한 상태다. 기업 가치를 높여 이를 매각해야 하는 사모펀드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네이버와 쿠팡의 공격적인 경영 계획이 발표되면서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의 열기도 뜨거워지고 있다.
네이버와 쿠팡의 공격적인 경영 계획이 발표되면서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의 열기도 뜨거워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떨어진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MBK파트너스가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가진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뒤 온·오프라인 시너지 구축에 주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어느 기업이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더라도 판세를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오히려 ‘득’보다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있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베이가 꾸준히 흑자를 내며 사업을 잘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성장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라며 “거래액이나 매출 추이를 볼 때 전체 시장의 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한 지 오래다. 그래서 매물로 등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결국 이베이 본사가 쿠팡과 네이버에 백기를 든 셈인데 이런 이베이코리아를 무리하게 인수했다가는 자칫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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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 동맹 거세질 것”…M&A 시장도 활성화 전망

“이커머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앞으로 추가 동맹을 결성할 가능성이 높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내놓은 전망이다. 그는 네이버에 이어 카카오를 중심으로 새로운 동맹을 결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카카오 또한 이커머스 진출을 공식화한 상태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 빠져 앞으로의 계획에 관심이 쏠린다.

주 애널리스트는 “카카오는 많은 메신저 유저를 갖고 있는 만큼 네이버처럼 플랫폼 경쟁력이 강력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카카오와 물류에 강점을 갖고 있는 기업들의 합종연횡이 이뤄지면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A 기업 관계자 역시 “현재 이커머스 시장은 필요하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며 “생존을 위해 많은 기업들이 네이버처럼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파트너를 찾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앞으로 이커머스 기업들 간의 인수·합병(M&A)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B 기업 관계자의 전망이다. “이커머스 시장이 과거 검색엔진 시장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엠파스·야후·라이코스 등 다양한 기업들이 있었지만 큰 차별성이 없는 기업들은 다 사라졌다. 뚜렷한 특징이 없는 이커머스 기업들은 결국 도태돼 매물로 나올 것이다.”

C 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현재 이커머스 시장이 워낙 빠르게 커져 대부분의 업체들이 성장하고 있지만 조만간 시장이 성숙하고 ‘적자생존’이 불가피할 것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