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쓴 두 여성이 흙이 드러난 골목길 끝, 푸른 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서로를 감쌌다. 집은 낡았지만, 골목을 비추는 햇볕과 인물들의 모습에서 온기가 넘친다. 사진가이자 시인 조병준이 모로코 쉐프샤우엔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질감과 정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조씨의 창작의 근원은 여행이다. 30년 전, 서른 살을 앞두고 간 인도 여행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 후로 그는 인도, 히말라야, 아프리카의 오지와 유럽 등 전 세계를 다녔다. 그러면서 고달프고 팍팍한 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품어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작가는 그 장면들을 사진과 시로 담아나갔다. 그 세월은 작가에게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례’의 시간이었다. 세계를 떠돌며 예술활동을 이어온 조씨가 30년을 정리한 책을 내고 전시를 연다. 저자의 열두 번째 책이다. 타인과 이국 문화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그의 사진들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서 4월 18일까지 만날 수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