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태로 공공 신뢰 바닥…사업 구심점 확보할까
서울시장 선거도 변수…위헌성 등 논란도 많아


정부가 서울 도심에 주택공급을 확충하기 위해 고안한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 사업의 1차 후보지가 베일을 벗었다.

은평구 연신내역세권 등 서울시내 21곳이 일단 사업 검토 대상에 올라 주민 동의 여건이 충족되면 사업이 본격화된다.

하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여파로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사업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졌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야 후보 모두 민간 주택시장 규제 완화를 공약한 상황이어서 이들 사업이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공공주도 도심 고밀개발 사업 불안한 '첫발'
◇ LH 사태에도…"사장님, 저희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이날 발표된 후보지는 은평구 연신내역세권과 도봉구 창동 준공업지역, 영등포 신길동 저층주거지 등 21곳이다.

이들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총 2만5천호의 주택이 공급된다.

이 사업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내놓은 2·4 주택공급 대책의 핵심 내용이다.

주택을 지을 공간이 없어 보이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5년간 11만7천호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마술 같은 묘책이다.

도심 알짜배기 땅에서 첨예하게 맞서는 토지주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사업을 속도감 있게 끌어가기 위해 고안된 것이 공공 주도 방식이다.

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아예 토지주로부터 땅을 넘겨받아 사업을 진행하고 이후 주택 등으로 정산하게 된다.

그만큼 공공에 대한 강한 신뢰감이 바탕이 돼야 가능한 사업이다.

하지만 최근 LH 땅투기 사태를 통해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이 사업 모델이 구심력을 갖고 추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공공재개발 사업 후보지 중에서도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공공재개발은 LH나 SH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조합과 사업 공동 시행자로서 참여하는 방식인데도 일부 사업지에선 공공이 개입하는 데 대한 반감이 감지된다.

LH 대신 SH가 좀더 주도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SH라고 해서 LH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는 반응이다.

또한 최근 변수로 등장한 것이 서울시장 선거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도 민간 재개발 재건축 등 주택시장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민간 주택사업이 활발해지면 굳이 임대주택을 더 지으면서 공공이 개입하는 사업 방식을 택할 이유가 없어진다.

서울 강북의 한 재개발 사업지 조합 관계자는 "사업이 오랫동안 추진되지 못하던 차에 공공재개발 사업 방식을 선택했고 주민들의 분위기도 매우 좋은 상황"이라며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규제 완화를 언급하고 있어서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업 방식을 만들면서 스스로 마지노선을 설정했다.

예정지구로 지정된 이후 1년 이내 토지주 3분의 2, 면적기준으론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사업이 확정되고, 그렇지 않으면 자동으로 취소된다.

아직은 '이 땅에서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지자체 등의 판단만 있을 뿐, 대부분의 토지주나 주민에 대한 의견 청취는 이뤄지지 않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사업은 토지주 3분의 2가 동의하면 소유권을 넘겨받아 개발하는 방식인데, 어느 정도의 찬성표를 얻느냐가 관건이지만 LH 사태 이후 공공이 주도하는 사업에 대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주도 도심 고밀개발 사업 불안한 '첫발'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장은 "현재 공공의 신뢰가 많이 추락해 지금 전체적인 분위기는 '공공에 믿고 맡길수 있는 게 아니네'라는 것"이라며 "2·4 대책을 냈을 때와 지금은 환경과 분위기가 많이 바뀐 만큼 공공이 주도하는 것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민관이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LH 사태의 후폭풍과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추진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는 있겠으나 사업 추진 주체가 와해된 지역에선 여전히 공공주도 사업을 선택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 위헌 논란에 주변부 민원 등 난제 많아
이뿐만 아니라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 사업은 공개된 직후부터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2·4 대책을 발표한 이후인 2월 5일부터 개발사업 지역의 주택 등 부동산을 취득하면 우선공급권, 즉 입주권을 주지 않는 투기방지 대책에 대해선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사업이 추진될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빌라 등을 매입했는데 이후 사업이 추진된다는 이유로 현금청산 대상으로 분류하는 것은 지나친 기본권 침해가 아니냐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사업 추진과 별개로 빌라 등 주택 거래 자체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내용 수정은 없다고 못 박았다.

국토부는 이미 법률검토를 통해 위헌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어차피 대책 이후 손바뀜이 많은 곳은 사업지로 선정하지 않을 것이기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도심에 용적률을 700% 이상 올려주는 사업 방식에 대해서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공공주도 도심 고밀개발 사업 불안한 '첫발'
파격적인 용적률 인센티브를 줘서 도심의 고밀 개발을 하겠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지와 맞닿은 연접지역은 상대적으로 일조권 등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교언 교수는 "도심에 최고 용적률을 700%까지 준다고 했지만 사업지 주변에선 일조권이나 주차난 등 민원이 만만치 않을 것이며 임대주택을 많이 넣는 것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반발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직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되지 않았다.

근거법인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에 상정도 되지 못해 언제 법이 통과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변창흠 장관이 사업 계획을 주도해 입안했으나 법안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도 전에 LH 사태의 책임을 지고 경질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실컷 토지주들을 설득했는데 막상 개정돼 시행되는 새로운 법과 사업 내용이 일부 다르게 되면 혼란은 불가피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회가 4월 임시국회에선 법안을 상정하고 빠른 속도로 통과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