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선대선' 원칙…무기시험 계속·美대응에 수위 맞출 듯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으로 규정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불만을 쏟아내는 등 북미 간 신경전이 고조되는 형국이다.
북한은 '강대강·선대선' 원칙을 내세우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고 있지만, 미국도 북한의 도발에 "상응하는 대응"을 경고하고 있어 어느 한쪽도 먼저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리병철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27일 담화에서 "자위권에 속하는 정상적인 무기시험을 두고 미국의 집권자가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걸고 들며 극도로 체질화된 대조선 적대감을 숨김없이 드러낸 데 대하여 강한 우려를 표한다"며 "미국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우리 국가의 자위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며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국의 새 정권이 분명 첫 시작을 잘못 떼였다고 생각한다"며 "앞뒤 계산도 못 하고 아무런 말이나 계속 망탕(마구잡이로 하는)하는 경우 미국은 좋지 못한 일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그들(북한)이 긴장 고조를 선택한다면 대응이 있을 것이다.
상응한 대응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발언 이후 북한의 이런 반발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다만, 지난해 10월 북한 군인이 달 수 있는 최고 계급인 '원수'로 초고속 승진한 인물이자, 군사 부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이어 서열 2위인 리 부위원장 명의 담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의 지위를 고려하면 이번 담화는 사실상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을 담은 메시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번 담화 수위도 최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3월 16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3월 18일) 담화 내용보다 세다.
이전 담화는 미국의 "강압적인 자세"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미국의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기류가 더 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북미관계가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평가한 대목이 눈에 띈다.
여기에는 단순히 이번 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의 대응뿐 아니라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 참여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한 기간 인권 비판 등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모든 언행에 대한 불만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사일 발사를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대북제재위원회를 소집하는 등 이전 정부보다 강경하게 대응하는 모습에 향후 협상 테이블에 앉더라도 양보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예상하고 더 강한 압박을 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리 부위원장이 "미국의 새 정권의 호전적인 자세는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를 다시금 가리켜주고 있다"고 말한 대목에서 그런 태도가 읽힌다.
이는 '강대강 선대선' 원칙으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지난 1월 8차 당대회 입장을 다시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북한은 자위적 국방력 확보를 명분으로 군사훈련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이어가며 미국의 대응에 따라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현재까지 미국의 언행에서 선대선은 보이지 않고 강대강만 있는 상황에서 맞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담화는 미국이 선대선으로 전환하도록 미국을 압박하는 데 방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은 다음 주 후반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에서 동맹국 의견을 최종 수렴한 뒤 새로운 대북 정책 검토를 끝낼 것으로 보인다.
리병철 부위원장은 "우리는 결코 누구의 관심을 끌거나 정책에 영향을 주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번 미사일 발사에는 미국이 어느 정도 선까지 허용할지 시험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도 단거리 미사일 정도의 도발은 예상 범주 안에 넣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의 최근 도발과 강경 발언을 정책 검토에 어느 정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미국도 곤혹스러운 것 같다"며 "미국은 대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자국 내 정치적 고려 때문에 북한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고, 북미 누구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과거 전략적 인내와 비슷한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