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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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한 이후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4기)의 ‘조율형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 국면마다 극한대결을 피하면서 검찰의 실리를 지켜내, 검찰 구성원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윗선 지시 수용하면서 실리 챙기는 스타일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직무대행은 전날 별건수사와 과도한 구속수사 등 검찰의 수사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2일 과거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수수 사건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식 수사관행이 드러났다며 이를 적극 개선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 만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자체 개혁안을 조속히 발표한 것은 박 장관의 문제 의식에 동의한다는 사인을 주기에 충분했다”며 “검찰이 조직 이기주의 차원에서 개혁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는 인상도 남겼다”고 평가했다.

조 직무대행은 지난 24일 연 부장회의에서 “우리 검찰은 언제부터인가 OO라인, ◇◇측근 등 언론으로부터 내편, 네편으로 갈라져 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며 “사법의 영역에서조차 편을 나누기 시작하면 정의와 공정을 세울 수 없다. 법리와 증거 앞에 자신의 철학이나 세계관을 내세워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검찰 안팎에선 조 직무대행이 검찰 내부에 자성을 당부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여권을 향해 날을 세운 것으로도 해석하고 있다.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을 비롯해 현 정권을 겨냥한 주요 수사도 ‘법리와 증거’에 따랐을 뿐이며, 진영 정서에 입각해 검찰을 흔들어선 안된다는 뜻을 은연 중에 내비쳤다는 것이다.

지난주 박 장관이 한 전 총리 사건을 대검 부장회의를 통해 재심의하라고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데 대해, ‘고검장 투입 카드’로 맞받은 것도 조 직무대행의 묘수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장관의 지시를 수용한다는 명분을 지키면서도 공정성 강화를 이유로 고검장들을 투입해 대검 부장들에게만 주도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검찰대행은 ‘고검장 카드’ 방침을 언론에 공표하기 전, 박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미리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사전에 이해를 구하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괜한 잡음을 없앤 것도 조 직무대행이 기지를 발휘한 것이란 평가다.

지난해 추-윤 갈등에도 '물밑 중재'

조 직무대행은 지난해에도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7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손을 떼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한 뒤 총장에 결과만 보고하라고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윤 전 총장은 당시 추 전 장관의 지시 수용여부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않고 침묵을 지켰다. 검찰 안팎에선 윤 전 총장이 추 전 장관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선언할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레 흘러나오며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추 전 장관을 보좌하던 조 직무대행이 대검과의 물밑협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윤 전 총장은 추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6일 만에 입을 열고, ‘독립수사본부 구성’ 카드를 역제안 했다.

채널A 사건 수사에서 윤 전 총장이 손을 떼되, 친여 성향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검사장)이 이끄는 수사팀은 공정성 우려가 있어 해당 사건 지휘를 김영대 당시 서울고검장에게 맡기자는 절충안이었다. 추 전 장관은 “(수사지휘서) 문언대로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며 이 제안을 거부하긴 했다.

비록 조 직무대행의 중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긴 했지만, 강대강 대치를 막으려던 그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는 얘기가 당시에도 흘러나왔다. 조 검찰대행은 지난해 말 ‘윤석열 징계’ 사태에서도 “검찰 개혁의 대의를 위해 장관님, 한 발만 물러나 달라”는 읍소 형태의 호소문을 공개적으로 추 전 장관에게 올려 눈길을 끌었다.

완곡한 어법 구사하는 원만한 해결사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소신에 따라 거침없이 말하는 스타일이라면, 조 직무대행은 완곡한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구성원들도 갈등의 분기점마다 원만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이는 조 직무대행에 대해 지지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직무대행이 비록 안정감 있게 조율과 중재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땐 번번이 법무부에 반기를 든 것으로도 해석된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추 전 장관의 징계 철회를 공개적으로 요청했고,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선 무혐의 방침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선 그를 고깝게 여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치검사 윤석열은 물러났으나 그 자리를 새롭게 조남관이라는 정치검사가 채웠다”며 “조남관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대놓고 반기를 든 윤 전 총장 보다 ‘영리하게’ 반기를 드는 조 직무대행이 더 미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 직무대행은 현 여권과 인연이 깊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장을 지냈고, 현 정부 들어선 국가정보원 감찰실장으로 임명돼 국정원 내 적폐청산 작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사실상 여권의 눈 밖에 나게 된 만큼, 차기 검찰총장 유력 후보군에선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