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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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벌어진 일을 '대륙의 스케일'이라는 재치있는 말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땅이 넓고 사람도 많고, 나라 전체의 경제규모 역시 크다보니 중국에선 상식을 넘어선 일이 부지기수다. 가령 뇌물이나 횡령 사기사건이 터지면 몇억 몇십억원이 아니라 몇백 몇천억원이 기본일 때가 많다. 조(兆)단위인 경우도 심심찮다.

규모만 큰 게 아니다. 내용면에서도 남다르다. 한국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현실로 펼쳐내 놀라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너무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인 일에도 태연작약이다. 최근 한국을 발칵 뒤집은 중국산 '알몸 김치' 사태도 그런 종류다. 최소한의 기본도 못 갖춘 최악의 위생환경에서도 무심하게 김치를 담그는 내공, 우리에겐 '넘사벽'이다. 그런데 요새는 대륙 스케일을 보는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 식상한 느낌도 만만찮다. 대륙 스케일도 울고 갈 기막힌 일이 대한민국 안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어서다.

특히 정치분야에서는 우리도 스캔들 규모가 '조 단위'를 오르내리는 시대를 열어제쳤다. 보궐선거판을 뜨겁에 달구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만 봐도 그렇다. 대륙의 그 무슨 '묻지마 프로젝트' 못지 않다. 공사비가 28조원까지 든다는데 최소한의 입법절차도 예타도 없이 막가파 식으로 밀어붙이는 여당의 폭주행태는 탈(脫) 아시아급이다. 그 공항이 '선거용'임을 대놓고 밝히고 유권자 매수성 언행을 쏟아내도 선관위와 국토부는 딴청이다. 급조한 선심사업의 최대 수혜자가 낯뜨거운 성추행으로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전 시장이라는 대목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대륙발(發) 해외토픽에 한 치도 꿀리지 않은 상상초월의 반전 아닌가.

서울시장에 출마한 어떤 후보는 1조원이 드는 공약을 덜컥 던졌다. 당선 즉시 1인당 10만원의 위로금 보편지급을 '1호'로 결재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선시켜주면 1조원 뿌리겠다'는 노골적 제안을 던질수 있는 배포와 정치환경, 베이징시장도 부러워할 것 같다.

'K스케일'은 질적 측면에서도 대륙 스케일을 이미 앞지른 듯하다. 윗물부터 아랫물까지 모조리 썩어있는 공직의 요지경 투기행태는 중국발 부패뉴스라 해도 믿기 쉽지 않은 비현실적 내용으로 가득하다.

'피해호소인'이라는 발칙한 작명에서는 대륙도 못 따라올 센스가 꿈틀된다. 피해호소인의 절절한 호소를 뒤로하고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며 가해자를 감싸는 정신세계는 또 어떤가. 딸의 부정입학이 사실로 굳어져가는 상황에서 야당 정치인 자제의 부정 입학 의혹을 SNS에 버젓이 링크하는 정권 실세의 클라스는 비교불가급이다. 피해호소인에 2차 가해 발언을 쏟아내고 공감하기 힘든 논리로 사사건건 가르치려 드는 검사의 등장에서는 한국 사법시스템의 '스케일 업(up)'이 적나라하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성역화해 시민과 예술가들의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이런 일에 국가 기관이 앞장서는 일도 중국 스케일을 닮았다. 먼발치서 대통령에게 신발 던졌다고, 대통령 비판 대자보 붙였다고 구속하고 기소하는 검경의 모습도 달라진 스케일의 방증이다. 신문 만평이 불순하다고 국가보훈처가 민의의 전당에서 나가서 처벌 운운한 것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이상과 너무 괴리된 장면 아닌가.

자칭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된 뒤 우방들로부터 인권과 자유의 부재를 지적받는 작금의 현실도 상상 그 이상이다. 대륙 스케일과 합을 겨룰 정도가 돼서일까, 어느새 외교 국방 경제 등 국가핵심 이유에서까지 동맹보다 대륙과의 씽크로율이 더 높아진 현실은 쉬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너무 놀라서는 안된다. 어마무시한 K 스케일은 날마다 '리즈 갱신' 중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