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의 셀프리더십] 탈피 탈각(脫皮脫殼)을 못하면 주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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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자 최재천 교수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에서 고래의 행동을 이렇게 적었다.
“고래는 비록 물속에 살지만 엄연히 허파로 숨을 쉬는 젖먹이 동물이다. 그래서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면 무엇보다도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쉴 수 없게 되므로 쉽사리 목숨을 잃는다. 그런 친구를 혼자 등에 업고 그가 충분히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떠받치고 있는 고래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고래들은 또 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육체적인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무언가 괴로워하는 친구 곁에 그냥 오랫동안 있기도 한다”
눈길을 끈 것은 고래의 동료애다. 부상당한 고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자기 등에 업은 채 물 위로 올라오는 행동도 그렇고,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떠받치고 다니는 모습에서 동료애가 무엇인지 일깨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동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 고래의 행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신체적 이상으로 정상적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약 올리고, 외면하고 조롱하는 사람들과 비교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실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을 한다. 노약자를 위로하고, 장애자를 배려하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면 고래가 부상당한 동료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자료: 픽세베이
삼성은 반도체 제조 과정에 사용되는 일본산 소재 220여 품목을 모두 대체하는 결정을 내렸다. 기술적으로 완전한 탈(脫) 일본화의 시동을 걸은 것이다. 이윤을 따라 움직이는 기업 생리상 쉽지 않은 결정이다. 당장의 손해를 무릅쓰더라도 기술적으로 일본의 지배력에서 벗어나겠다는 고뇌의 결단일 게다. 전문가들은 그런 행보를 보면서 한 가지를 더 주문하고 있다. 대체 기술을 확보하는 복수의 대안 중 한 가지는 반드시 한국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본처럼 자신들의 강점을 무기 삼아 악의적 횡포를 가하는 일이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도, 이를 알아주고, 관심 갖고 지원하는 대상이 없다면, 오늘날 우리가 접한 일본의 횡포는 언제든 다시 경험할 수밖에 없다. IMF 사태가 대한민국을 새롭게 재건하는 기초가 되었다면, 일본의 반도체 소재 규제와 화이트 리스트 국가 제외 사태는, 소재 산업과 기초과학이 왜 중요한 것인지, 또 편중된 산업 구조가 얼마나 위험한 칼로 돌변할 수 있는지 온 국민을 눈뜨게 한 사건인 셈이다.
脫(벗을 탈) = 月(肉 몸 육의 변형) + 兌(바꿀 태)
脫은 “몸의 허물을 벗고 그 형태를 바꾼다”는 뜻이다. 농민 작가 전우익 선생이 지은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 겨』에 脫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볼 수 있는 글이 있다.
“느티나무는 가을에 낙엽 진 다음, 해마다 봄이 되면 새 잎을 피울 뿐만 아니라, 껍질도 벗습니다. 누에를 쳐 보니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은 다음 고치를 짓습니다. 탈피 탈각이 없이는 생명의 성장과 성취는 불가능합니다. 탈피 탈각을 못하면 주검이겠지요”
탈(脫)의 내면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한다. 전우익 선생의 탈피 탈각(脫皮 脫殼)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습관의 껍질, 관행의 껍질, 지식의 껍질과 같은 것들과 상생하며 편하게 지낸 사람들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이는 개인도 기업도 심지어 국가도 벗어야 할 때 벗지 못하면 기존에 익숙했던 것의 지배를 받거나,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취한 반도체 소재 규제와 화이트 리스트 국가 제외 조치는 우리의 잠든 생각을 깨우는 값비싼 보약이 되도록 해야 한다. 탈피 탈각 없이는 성장과 성취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주검 앞에 서야 한다는 작가의 경험적 시각이, 책 속의 한 구절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부상당한 고래가 기력을 되찾을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등을 빌려주는 동료애를 본 받자.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기댈 수 있도록 등을 내어주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자생할 수 있도록 돕고, 또 그 기술을 대기업이 사주는 상생의 관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동안 경험했던 익숙함의 껍질을 벗겨내는 시도가 있기를 희망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행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헤르만 헤세 / 데미안 中에서 –
“고래는 비록 물속에 살지만 엄연히 허파로 숨을 쉬는 젖먹이 동물이다. 그래서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면 무엇보다도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쉴 수 없게 되므로 쉽사리 목숨을 잃는다. 그런 친구를 혼자 등에 업고 그가 충분히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떠받치고 있는 고래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고래들은 또 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육체적인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무언가 괴로워하는 친구 곁에 그냥 오랫동안 있기도 한다”
눈길을 끈 것은 고래의 동료애다. 부상당한 고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자기 등에 업은 채 물 위로 올라오는 행동도 그렇고,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떠받치고 다니는 모습에서 동료애가 무엇인지 일깨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동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 고래의 행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신체적 이상으로 정상적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약 올리고, 외면하고 조롱하는 사람들과 비교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실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을 한다. 노약자를 위로하고, 장애자를 배려하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면 고래가 부상당한 동료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자료: 픽세베이
삼성은 반도체 제조 과정에 사용되는 일본산 소재 220여 품목을 모두 대체하는 결정을 내렸다. 기술적으로 완전한 탈(脫) 일본화의 시동을 걸은 것이다. 이윤을 따라 움직이는 기업 생리상 쉽지 않은 결정이다. 당장의 손해를 무릅쓰더라도 기술적으로 일본의 지배력에서 벗어나겠다는 고뇌의 결단일 게다. 전문가들은 그런 행보를 보면서 한 가지를 더 주문하고 있다. 대체 기술을 확보하는 복수의 대안 중 한 가지는 반드시 한국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본처럼 자신들의 강점을 무기 삼아 악의적 횡포를 가하는 일이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도, 이를 알아주고, 관심 갖고 지원하는 대상이 없다면, 오늘날 우리가 접한 일본의 횡포는 언제든 다시 경험할 수밖에 없다. IMF 사태가 대한민국을 새롭게 재건하는 기초가 되었다면, 일본의 반도체 소재 규제와 화이트 리스트 국가 제외 사태는, 소재 산업과 기초과학이 왜 중요한 것인지, 또 편중된 산업 구조가 얼마나 위험한 칼로 돌변할 수 있는지 온 국민을 눈뜨게 한 사건인 셈이다.
脫(벗을 탈) = 月(肉 몸 육의 변형) + 兌(바꿀 태)
脫은 “몸의 허물을 벗고 그 형태를 바꾼다”는 뜻이다. 농민 작가 전우익 선생이 지은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 겨』에 脫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볼 수 있는 글이 있다.
“느티나무는 가을에 낙엽 진 다음, 해마다 봄이 되면 새 잎을 피울 뿐만 아니라, 껍질도 벗습니다. 누에를 쳐 보니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은 다음 고치를 짓습니다. 탈피 탈각이 없이는 생명의 성장과 성취는 불가능합니다. 탈피 탈각을 못하면 주검이겠지요”
탈(脫)의 내면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한다. 전우익 선생의 탈피 탈각(脫皮 脫殼)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습관의 껍질, 관행의 껍질, 지식의 껍질과 같은 것들과 상생하며 편하게 지낸 사람들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이는 개인도 기업도 심지어 국가도 벗어야 할 때 벗지 못하면 기존에 익숙했던 것의 지배를 받거나,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취한 반도체 소재 규제와 화이트 리스트 국가 제외 조치는 우리의 잠든 생각을 깨우는 값비싼 보약이 되도록 해야 한다. 탈피 탈각 없이는 성장과 성취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주검 앞에 서야 한다는 작가의 경험적 시각이, 책 속의 한 구절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부상당한 고래가 기력을 되찾을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등을 빌려주는 동료애를 본 받자.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기댈 수 있도록 등을 내어주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자생할 수 있도록 돕고, 또 그 기술을 대기업이 사주는 상생의 관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동안 경험했던 익숙함의 껍질을 벗겨내는 시도가 있기를 희망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행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헤르만 헤세 / 데미안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