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표정이거나 무표정으로 말하는 사람,
손짓을 많이 사용하거나 눈빛으로 말하는 사람 외에
각자 개성대로 그 방법이 다양하듯이 글씨를 쓰는 방법도 틀릴게 없다.
그림 작가 버트도드슨(Bert Dodson)은 ‘처음의 충동’과 ‘후반의 처리’를
구분하는 것이 창작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하였다.
전자는 ‘생성’이고, 후자는 ‘변형’인 것이다.
처음에 썼던 글씨를 여러 차례에 걸쳐 글꼴의 기본과 원형을 변형해나가는
과정을 거치며 새롭고 예상하지 못한 글꼴이 나온다. 붓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은 그림에 비해 다소 즉흥적이다.
숙련된 캘리그래퍼들은 계산된 글꼴의 비례와 형태를 계획하며 쓴다.
입문 단계에서 글씨 쓰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면 비슷한 글꼴에서 변화를 주기 어렵다.
마음을 다스려야 좋은 글씨를 쓸 수 있다는 서예 정신은 캘리그래피에도 변함이 없다.
글씨를 여러 형태의 글꼴로 만드는 다양한 방법 중 간단한 사례를 들면
첫째, 궁서체의 글꼴을 원형으로 하여 자음과 모음의 두께에 차이를 주어
대비를 크게 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 글씨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해보고 연관된 의미의 단어를 끌어와서
자음 혹은 모음의 한 부분에 기호나 장식처럼 표현할 수도 있다.
셋째, 글씨의 구체적인 형상이나 의미를 글꼴의 전체 형태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지나친 장식이나 직접적인 그림, 장난스러운 표현은 절제하고
전체 형태에 동세나 의미를 담아내는 글꼴이 높은 완성도를 가진다.
한글은 로마자의 음소 문자와 달리 자음자와 모음자를 결합하여
모아쓰기로 글꼴이 구성되므로 표현에 다양성을 가지는 장점이 있다.
‘행복’이란 글씨를 캘리그래피로 써본다면
먼저 행복에 대한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의미나 개념을 생각해본다.
동의어로 사랑을 떠올릴 수도 있고 그 감정은 즐겁고 풍부하다.
행복의 형상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혹은 행복한 표정을 연상할 수 있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매개는 가슴이나 심장일 것이다. 좀 더 시선을 끌 수 있는 글씨를 완성해 나가는 다음 단계는
활자나 궁서체 등의 글꼴에서 볼 수 있는 초·중·종성의 대비와 차별화 하거나
전혀 엉뚱한 위치에 중성이나 종성을 배치했을 때 이색적인 글꼴이 되기도 한다.
자음과 모음의 길이 혹은 음절간의 오묘한 대비가 매력있는 글씨를 만든다.
캘리그래피는 작가가 그 글씨의 의미나 감정을 글꼴로 객관화하여
독자로 하여금 작가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여야한다.
작가의 가슴에 숲이 없다면 풀 한 포기 그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화선지에 붓을 내려놓기 전에 글씨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글씨로 풀어낼 수 있을 때 기존의 글씨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정경숙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정경숙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kyungsuk.jung.9
정경숙의 블로그
http://thecall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