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파전과 막걸리. 해창 막걸리를 만난 날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다. 생생한 빗소리를 들으며 한 사발 가득 채웠던 막걸리는 쌀이 듬뿍 들어간 걸 알겠다 싶을 정도로 걸쭉했고, 단맛이 났다. 그런데 감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무첨가 막걸리’ 란다. 자연 그대로의 감미가 나는 막걸리를 맛보며, ‘세상에 이런 막걸리도 다 있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런 술을 빚는 곳이라면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더랬다.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일본식 정원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해창 주조장의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이 보인다. 일본식 가옥과 정원은 광주와 목포에 정미소를 두고 해창에 쌀 창고를 운영했던 ‘시바다 히코헤이’ 라는 일본인 사업가가 1927년에 지었다. 뒷산에서 흘러온 물이 이룬 연못, 감나무와 측백나무, 모과나무, 가시나무, 일본전나무, 배롱나무 등 40여 종의 수목. 땅을 감싸주는 이끼. 바위와 5개의 산… ‘소우주’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원을 보며 감탄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한 켠 이 아렸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수탈과 침략의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창 주조장의 오병인 대표는 정원에 역사적 유물과 내용을 적은 푯말을 세워두었다. 양조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좋은 재료에 정성이 더해진, 무첨가 막걸리
해창 막걸리는 6도, 9도, 12도로 총 세 종류로 도수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지만, 담백함과 고소함 사이로 단맛이 비친다. 오직 햅쌀과 물, 누룩만으로 만드는 막걸리라는데, 단맛은 어디에서 나는 걸까?

비법은 찹쌀에 있다. 찹쌀은 발효가 되지 않기 때문에 찹쌀과 멥쌀을 함께 넣으면 단맛과 감칠맛이 남는다. 찹쌀의 양으로 단맛의 강도를 조절하는 셈이다. 250m의 지하 암반수에 해남 찹쌀과 멥쌀,  새벽마다 수작업으로 술 빚는 정성까지 더해지니 막걸리는  마시는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순수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 첫사랑처럼.

내가 마시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시는 술이니까 최상의 재료에 정성을 더해 빚는다는 오병인, 박리아 대표. 그래서 해창 막걸리가 그렇게 맛있었나 보다.

*해창주조장 전남 해남군 화산면 해창길 1

김선주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