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참여 에둘러 경계…"아태지역서 ASEAN 중심적 역할 유지 지지"
"한반도 비핵화 대화 조속히 재개해야…코로나19 공조 양국에 이익"

방한하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중국 억제를 염두에 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에 대한 한국의 참여를 에둘러 경계하는 목소리를 냈다.

라브로프 장관은 한국 방문을 앞둔 지난 19일(현지시간) 연합뉴스 등 모스크바 주재 한국특파원단과 한 화상 인터뷰에서 방한 주요 의제에 관한 질문을 받고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의 아주 중요하고 전망 있는 파트너"라면서 "아태 지역 문제들도 얘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방한 러 외무 "미 '인도·태평양전략'은 블록 만들기" 비판
그는 현재 아태지역에선 "이 지역을 재편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이란 용어가 도입됐다"면서 "이 과정의 의미는 아주 우려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 등의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한 구조에 대치되는 무언가를 만들려는 시도가 취해지고 있다"면서 부정적 입장을 표시했다.

라브로프는 "우리가 주의 깊게 인도·태평양전략의 틀 내에서 행해지는 조치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은 진영화(블록화) 사고에 기반하고 있고, 어떤 긍정적 과정이 아니라 특정한 국가들에 대한 반대를 위한 블록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면서 "특정 국가 억제가 목표로 선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중국, 나아가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이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여러 차례 확인한 원칙으로 회귀하는 것이 유익하다"면서 "러시아는 모든 분야에 걸친 이 지역(아시아·태평양지역)의 협력 발전 과정에서 아세안의 중심적 역할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전략과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확대 등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아세안이 아태지역의 중심 협력체로 남아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방한 기간에 이와 관련한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밝힌 점은 한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쿼드 등에 깊숙이 참여하는 것에 우려의 입장을 전달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터뷰] 방한 러 외무 "미 '인도·태평양전략'은 블록 만들기" 비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앞서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 장관 '2+2' 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측으로부터 쿼드 가입 요청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쿼드 가입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면서도 "우리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어떻게 조화롭게 조율할 수 있는지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어 한국 측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정세를 포함한 국제·지역 현안에도 논의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한반도의 안정적 정세 유지와 한반도 비핵화 과제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모든 관련국, 무엇보다 6자회담 참가국들에 건설적 태도를 보일 것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군사 분야에서 호전적 행동을 자제하고 대화 추진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대화가 아닌 다른 대안을 보지 못하며 대화를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관련국들에 촉구했다.

라브로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공조도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면서 현재 한국에서 러시아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를 생산하는 공동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우리는 한국의 제약과 전반적 의료 분야가 굉장히 발전해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이 분야의 협력은 상호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브로프는 또 방한 기간 중 양국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이 1년 연기돼 열릴 것이라면서 상호교류의 해 프로그램은 정치, 통상·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의 분야에 300가지 이상의 행사를 포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밖에 한러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의료·조선·운송·에너지 등 양국 간의 9개 핵심 협력 분야 사업 구상인 '9개 다리'(9-Bridge) 프로젝트 이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 방문에 이어 23~25일 방한하는 라브로프 장관은 24일 '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에 참석하고, 2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다.

[인터뷰] 방한 러 외무 "미 '인도·태평양전략'은 블록 만들기" 비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