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구멍가게 해요!’



어디가서 남들이 나에게 무엇을 하냐고 물으면 그렇게 대답한다.



구멍가게는 본래적 의미로는 ‘동네의 수퍼’가 가장 널리 쓰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구멍가게라는 말이 가장 자주 쓰이는 업종은 분명히 ‘수출입 오퍼상’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퍼상은 사실상 자기 자본이 필요없이 중간자로서 ‘정보’를 매개체로 하는 업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퍼상이라하면 아무리커도 10명이 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 재미있으려니 너도 나도 구멍가게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정말 구멍을 파는 가게는 아니다. 그저 규모가 작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보면 구멍은 ‘틈’이고, 구멍가게는 ‘틈에서 일하는 가게’이다. 뿐만 아니라 동네 구멍가게나 오퍼상이나 지리적 의미가 중요했다. 오퍼상은 대개 자기가 익숙한 지역의 바이어를 주로 상대하였고, 동네 슈퍼는 반경 수백미터의 동네 골목이 주 시장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구멍가게는 거리적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하는 제품이 남과 다름을 의미해야 한다.



구멍가게가 어느 정도까지 인지 굳이 정의를 내릴 필요는 없다. 그저 사장이 느끼는 정도라고만 해두자. 직원 10명으로 구멍가게라고 생각하면 구멍가게이고, 본인이 느끼기에 꽤 버거운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구멍가게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대충 정의를 내린다면 ‘롱테일경제학’에서 말하는 머리가 아닌 기업정도로 해두자.

구멍가게란 무엇인가
다행인 것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이전보다 구멍가게의 입지가 조금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숫자는 꼬리부분에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도 선택권이 다양해져 그래도 나름대로의 소비자를 찾을 수있게 된 것이다. 저마다 취향이 평균적인 대량소비.대량생산의 시대라면 사실 ‘틈새시장’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다행히도 점차 꼬리부분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과 같은 제품을 쓰는 걸 요즘 사람들은 싫어한다. 자기 만의 소비 취향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부분을 개성적인 소비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진이 취미인 사람들을 예로 들어보자. 사진을 취미로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 카메라는 기본이고 렌즈 몇 개만 사도 1-2백만원은 우습다. 게다가 사진을 찍으러다니다 보면 그 비용도 적지 않다. 그나마 요즘은 필름값이니 인화료가 적거나 없어졌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잘먹고 잘 입는 것은 아니다. 사진에 돈이 많이 들어간 만큼 다른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자린고비처럼 살아야 한다. 이게 ‘소비의 트레이딩업’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여전히 대량생산.저가형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소비에서도 롱테일경제학이 적용될 수있다.



이처럼 구멍가게가 번창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규모의 경제’가 이전보다 중요성이 덜해졌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100만개를 만들어 판매한다면 10,000원이 될 제품을, 1000개만 만들었을 때 10만원이 아닌 15,000원에 만들 수 있다면 구멍가게도 충분히 틈새시장을 노릴 수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매비용을 엄청나게 줄여주었다. 인터넷에 쇼핑몰을 만들면 오프라인의 백화점 못지 않은 제품들을 판매할 수있다. 이처럼 시장이 매우 다양해졌기 때문에 구멍가게들이 영업을 할 만한 틈새들이 매우 많아졌다. 이전 같으면 상상하지도 못할 시장(예:초판만 파는 중고책 인터넷 서점)도 인터넷이 있음으로 가능해졌다. 기본적으로 인터넷은 글로벌하다. 로컬시장이란 이제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한다. 홈 페이지가 한글로 되어 있다고 해서 한국이 로컬시장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일단 미국.유럽에 사는 교민들이 보면 이미 한국민 만의 시장이 아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 한국내에서 소비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글로벌하게 시장이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파는 물건의 90%이상이 수입제품이다. 회사는 작을 지라도 추구하는 시장이 희귀한 제품일지라도 못할 게 없는 시장이 되었다. 영문 홈 페이지만 있다면 바로 온 세상이 나의 시장이다. 하지만 이 것이 전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시장이 글로벌화된 것만큼 경쟁도 글로벌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나의 경쟁자는 눈에 보였었다. 바로 같은 시장안에서 눈에 보이는 가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경쟁자였다. 요즘은 어떤가? 김치찌개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먹을 수있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어디에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중국에서도 시켜 먹을 수있다. 그러니 구멍가게라고 하지만 더이상 구멍가게여서는 안된다. 단지 규모만 작을 뿐, 생각은 글로벌해야 한다. 그게 예전 구멍가게들과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