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10월, 밀양 백운산(885m)을, 작년 1월, 9월, 11월에 각각
포천 백운산(904m), 양평 백운봉(940m), 영월 백운산(882.5m)을 올랐다.
그리고 지난 1월 19일, 또다른, 정선 백운산(1,426.2m)을 찾았다.
영월군 상동읍과 정선군 사북읍, 고한읍의 경계를 이룬 정선 백운산은
많고 많은 백운산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다.

정선 백운산은 고한역 인근, 막골을 들머리로 하여
정상 마천봉을 거쳐 마운틴탑, 도롱이연못, 화절령삼거리를 지나
강원랜드 폭포주차장으로 내려서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산방 카페에 고지된 산행 코스를 확인했다.
막골에서 조금 더 산 속으로 진행하여 하이원CC에서 산행을 시작,
강원랜드 폭포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걸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버스는 하이원CC가 아닌 폭포주차장 입구에 멈춰섰다.
별다른 사전 안내 없이 나들머리가 바뀐 것이다.
둘러치나 메치나 산길 걷긴 매한가지이나 안내 미흡은 ‘옥의 티’다.

폭포주차장 저 건너편에 내국인의 카지노 출입이 허용된 유일한 곳,
강원랜드가 먹성 좋은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한때 흥청거리던 탄광촌은 폐광이란 시련을 맞아 긴 세월 허덕였다.
그러다가 폐광촌에 카지노가 개장되면서 신천지로 탈바꿈했지만
카지노의 화려함 이면엔 좌절과 한숨도 깊다.몇해 전, 가족과 함께 강원랜드 호텔에서 1박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객장 로비에서 맞닥뜨린 모습들이 잊혀지질 않는다.
오늘, 굽이굽이 산모롱이를 돌아 오르며 당시를 떠올렸다. 평일이었는데도 카지노장은 꾼들로 북적거렸다.
호텔 로비 소파에 기대어 쪽잠을 자고, 바깥 계단에 쪼그려 앉아
컵라면을 먹고, 고갤 떨군 채 멍하니 땅바닥을 응시하는 사람들…
하나같이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는 촛점을 잃은 듯 보였다.
한마디로 ‘대박’을 찾아 나섰다가 ‘쪽박’ 찬 모습들이었다.

자고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도박으로 ‘대박’ 난 예는 드물다.
혹 있다해도 필시 ‘쪽박’으로 귀결된다. 만고의 진리다. 
각설하고,
화절령 삼거리 조금 못미처에서 만난 절집이 생뚱맞다.
길가에 본때 없이 들어서 있다.
‘보성사’란 표시석이 없으면 얼핏 식당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주변과의 조화는 고려치 않고 상가처럼 길가에 바짝 붙여 지었다.
시비하자는게 아니라 그저 주변경관과 어울리지 않아서 뱉는 소리다.  
폭포주차장에서 2.4km를 걸어 화절령 삼거리에 닿았다.
이 일대는 봄이되면 진달래가 지천이란다.
봄날 산나물 뜯으러 나온 아낙들이 지천에 널린 진달래를 꺾어물었고,
광부들 역시 이곳에서 달달한 진달래 꽃잎을 꺾어 씹으면서 힘을 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花切嶺’으로, ‘꽃꺾기재’로 불리어지고 있다 한다.
이곳 삼거리에서 영월 상동 방면으로 길이 갈라진다.
길은 온통 거뭇거뭇하다. 폐광흔이 역력하다. 
중국에 차마고도(茶馬高道)가 있다면 정선엔 운탄고도(運炭高道)가 있다.
감히 티벳을 넘어 네팔과 인도로 이어지는 ‘차마고도’에 비할 순 없지만
그래도 해발 1,200m를 넘나들며 25km에 걸쳐 이어지는 운탄고도도
나름 의미있는 길임에는 틀림없다.
탄광이 흥할 때 석탄을 실어 나르던 찻길이라 널찍하고 완만하다.
제설이 되어 거뭇하게 炭痕이 드러난 산길을 걷는 느낌은 참으로 묘했다.
탄을 나르던 길이 이젠 ‘힐링’의 길로 포장되었으니 말이다.      
도롱이 연못을 가리키는 이정표에서 걸음을 멈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해발 1000m 숲속의 연못은 어떤 모습일까?
쭉쭉 뻗은 낙엽송 사이로 움푹 꺼진 듯한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이 바로 연못이다. 겨울엔 눈으로 뒤덮혀 있어 가늠키 어렵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도롱이 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겨난 생태 연못이라고 한다.
화절령 일대에 거주 하던 광부의 아내들은 이 연못에 살고 있는 도롱뇽에게
남편의 무사고를 빌었다. 그래서 ‘도롱이 연못’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연못에 도롱뇽이 생존하는 한 탄광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서
항시 도롱뇽의 서식 여부를 확인하였다고 한다.
도롱이연못을 지나 갈림길에서 화절령길을 버리고 마운틴탑 방향, 산죽길로 접어든다.

여기서 잠깐, ‘하늘길’에 대해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
지금 걷고 있는 백운산 일대 모든 산길을 통틀어 ‘하늘길’이라 한다.
‘하늘길’은 강원랜드가 제주 ‘올레길’에 버금가는 명품길로 만들겠다며
등록한 브랜드이다.
하이원리조트가 들어선 정선군 백운산 운탄로를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하늘길은 구간별 풍광에 맞게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
화절령길, 산죽길, 산철쭉길, 낙엽송길, 박새꽃길, 바람꽃길,
얼레지꽃길, 처녀치마길, 양지꽃길… 
마운틴탑을 향해 눈밭을 걷는 동안 군데군데 사각기둥 이정표가 박혀 있다.
이정표만 봐도 지자체가 아닌 강원랜드 주도로 조성된 길임을 알 수 있다.
나뭇가지 그림자가 하얀 캔버스에 길게 드러 누웠다.
우웅~ 소리가 간헐적으로 귓전을 간지럽힌다. 하늘을 올려다 봤다.
스키어를 실은 곤돌라가 정수리 위를 지나고 있다. 
드디어 나목 사이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운틴탑 정상(1,366m)이다.
사방이 확 트였다.
마운틴콘도와 마운틴탑을 잇는 쇠줄에는 곤돌라가 대롱대롱 스키어를 실어 나르고
짙푸른 하늘 아래 은빛 슬로프엔 형형색색의 스키어들이 겨울을 만끽 중이다. 
저 건너 백운산 마천봉이 손에 잡힐듯 시야에 들어왔다.
높고 낮은 산능선들이 파도처럼 너울거리고
강원산간의 겨울 빛은 넉넉하고 포근하다. 마운틴탑에서부터 백운산 마천봉까지는 ‘산철쭉길’이다.
슬로프 옆 산철쭉길을 따라 1,310m 안부에 도착, 자리를 폈다.
산객들이 머물었던 자리라 눈밭이 잘 다져져 있다.
설상가찬(雪上加餐)하니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당신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습니다’를 확인 한 후, 다시 발길을 옮겨
1,388m봉을 찍고 헬기장을 지나니 드디어 마천봉(1,426m)이다.

북동쪽 대덕산(1,307m)과 서북쪽 두위봉(1,466m), 그리고
동남쪽 함백산(1,573m)의 조망이 그지없이 장쾌하다.
순백의 스키장 슬로프는 길게 늘어뜨린 은발처럼 멋스럽다.
‘하이원리조트’의 인프라와 어우러진 백운산의 변신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빼어난 풍광에 광부의 고단함이 녹아있는 ‘하늘길’을 걸으며
트레킹의 또다른 의미를 되새겼다. 
마천봉에서 ‘얼레지꽃길’과 ‘처녀치마길’을 따라 ‘하이원CC’로 내려섰다.
산길 이름 때문에라도 꽃 피는 봄날, 한번 더 걸음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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